'네트워크 방어벽 운영체제'를 둘러싼 저작권 싸움 수년째 지속

▲ 유화석 한솔넥스지 사장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한솔그룹의 계열사인 네트워크 보안기업 한솔넥스지가 경쟁회사인 어울림정보기술(이하 어울림)과 ‘저작권 분쟁’으로 속을 끓이고 있다. 어울림 측이 “한솔넥스지가 어울림의 주력제품 ‘핵심기술’을 빼돌려 국내 주요 공공기관 500여 군데에 불법 복제 유포했다”고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 이에 대해 한솔넥스지 측은 “허위 사실”이라고 맞서면서 2년째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솔넥스지(옛 넥스지)는 2001년 설립된 국내 VPN(가상사설망)시장 1위 업체로, 2013년 9월 한솔그룹의 정보시스템업체인 ‘한솔인티큐브’와 ‘솔라시아’에 인수됐다. 이 회사는 2013년 11월 어울림 소유의 방화벽 운영체제 ‘SECUREWORKS V4.0’ 프로그램 저작권을 경매를 통해 인수하며 ‘기술과 고객’을 모두 유치하게 됐다고 밝혀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저작권’과 관련해 한솔넥스지는 어울림과 수년째 분쟁을 겪고 있다. 어울림 측은 “한솔넥스지가 ‘핵심 인력’과 ‘기술’을 빼돌려서 불법적인 영업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울림은 국내 1세대 토종 네트워크 보안솔루션 기업으로, 지난 몇년 간 내홍과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기업이다.

◇어울림 “핵심기술 탈취” VS 한솔넥스지 “허위 사실”

우선 어울림 측이 주장하고 있는 ‘기술 탈취 의혹’은 이렇다. 어울림 측은 “지난 2011년 9월 어울림에 재직 중이던 직원 A씨와 B씨가 회사 공인인증서를 도용해 주요 제품의 ‘SECUREWORKS V4.0 R2, R3, R4’와 이름만 유사하게 프로그램 제호 ‘SECUREWORKS 4.0’을 등록하고, 브로셔 파일(카탈로그를 스캔한 이미지파일)을 마치 어울림 핵심 제품의 소스코드인 것처럼 등록시켰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어 “회사를 나온 직원들이 퇴직금 미지급을 이유로 ‘SECUREWORKS V4.0’ 저작권에 대한 압류 신청을 걸었고, 이 저작권이 경매에 나오자마자 한솔넥스지가 인수하면서 기술이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직원들은 퇴직 후 한솔넥스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태로, 어울림 측은 이 직원들과 한솔넥스지가 공모해 기술을 빼돌렸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어울림 관계자는 “한솔넥스지는 해당 저작권을 인수한 뒤 ‘SECUREWORKS V4.0 R2, R3, R4’의 저작권을 모두 인수한 것처럼 보도자료를 배포해 국내 주요 공공기관 500곳의 기존 고객을 빼앗아 갔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어 “이후 한솔이 빼앗아간 공공기관에게는 기술 지원 및 업그레이드를 위해 어울림에서 미리 빼돌린 소스코드를 일부 수정해 유포하는 수법으로 불법 복제까지 한 정황도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소스코드란 소프트웨어 내용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나타낸 일종의 설계도를 뜻한다. 

▲ 한솔넥스지와 어울림정보기술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한솔넥스지 측은 “허위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한솔넥스지 관계자는 “소스코드가 등록이 안 됐다고 해서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보낸 공문을 보면, ‘등록신청서에 소스코드라고 명시해놓고 제품 브로셔를 등록했으니 정정을 하라’고만 적혀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계열도 검색해보면 소스코드가 아니라 제품 시리즈를 등록해놓은 경우도 있는 만큼, 소스코드가 없다고 해서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울림 전직 직원이 인장이나 핵심기술을 빼돌렸다는 주장도 허위 사실로 판결이 났다”며 “그 외에 영업비밀 누설 등 여러 고소 건도 무혐의로 판결이 났다. 수년째 말도 안 되는 허위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저 답답할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2014년 본사를 상대로 ‘저작권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도 ‘저작권을 인정해준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고 말했다. 한솔넥스지 측은 앞으로의 ‘법적 분쟁’을 통해 명확하게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가려낼 계획이다.

◇ '기술탈취 구설수'에 곤혹스런 한솔그룹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어울림과 한솔넥스지는 여러 건의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해왔다. 횡령, 배임, 영업방해, 저작권법 위반 등 다수의 고소 건이 서로 오고갔다. 작년 2월에는 한솔넥스지가 ‘저작권법 위반’ 및 ‘영업방해’ 혐의로 어울림을 역고소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검찰은 관련 고소건을 ‘불기소처분’했다. 

검찰은 “실제로 ‘SECUREWORKS V4.0’ 저작권 등록 시 제품소개서만 등록돼 있고, 소스코드가 보관되지 않아 감정이 불가했다”면서 “고소인의 주장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할만한 뚜렷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검찰의 불기소처분 이후 한솔넥스지는 ‘항고’를 한 상태다.  여기에 맞서 어울림은 지난 28일 한솔넥스지와 한솔인티큐브 등의 대표이사인 유화석 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계열사와 경쟁업체가 벌이고 있는 진흙탕 법정 싸움에 한솔그룹 측은 곤혹스런 기색이다. 중소업체와 벌이고 있는 ‘기술탈취’ 분쟁은 유쾌한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부도덕한 기업으로 구설수에 오를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한솔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최근 어울림이 고발했다던 배임 건은 공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진실은 법적 절차를 통해 가려질 것”이라고만 짧게 말했다.

한편 한솔그룹은 1965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새한제지를 인수해 전주제지로 출범한 기업으로, 1991년 장녀인 이인희 고문이 삼성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한솔제지로 사명을 바꾸고 제 2의 창업을 했다. 현재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IT 소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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