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박병모:현 광주뉴스통 발행인, 전 광주 FC 단장,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시사위크] 때 아닌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눈물 젖은 호남선엔 쌀쌀하기만 한 겨울비가 내리니 처연하기 그지없다.

1914년 1월 개통된 호남선. 일제 강점기 때는 수탈의 철도로, 1968년 시작한 복선화 공사는 36년 만인 2003년에야 겨우 마무리 된다. 2004년 호남고속철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지만 천안과 오송역 정차를 두고 7년 동안이나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을 구부려 허비하더니만 이제는 KTX 오송∼송정간 개통을 앞두고는 느닷없는 서대전역 경유 문제가 불거졌다. 고속철로 쌩쌩 달리는 게 배가 아프니 철로를 기나긴 세월처럼 구부려 쉬엄쉬엄 저속철로 가자는 논리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을지/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을지” 손인호 씨의 ‘비 내리는 호남선’을 굳이 부르지 않더라도, 김수희가 불러 히트한 ‘남행열차’, “빗물도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니”라는 가사를 목청껏 노래하지 않더라도 호남선은 ‘차별과 소외’의 상징이었다.

더욱 공분케 하는 것은 저속철 논리의 기저에 다름 아닌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지역주의가 다분히 숨겨져 있는데 있다. 코레일 사장 최연혜,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싱크탱크 역할을 해오거나 새누리당 전신인 과거 한나라당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들은 한통속이 된다. 개통을 앞두고 호남 고속철을 구부려 이왕이면 서대전역을 경유토록 한다면 ‘꿩 먹고 알 먹자. 그리되면 우리는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는 게 아니냐’고 암묵적으로 작당한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국정을 농단하더니 이제는 최·서 라인이 대전시장 권선택을 끌어들여 고속철도를 구부려 보자고 ‘대전 부르스’를 열창하는 형국이다.

이런 정치적 의도에 광주· 전남·북은 물론이고 충북권도 가세하면서 ‘KTX의 서대전역 경유는 절대 안 된다’는 반발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도 모자라 이제는 대전과 호남, 충북까지 가세하면서 지역주의에 매몰되고 있다.

호남고속철의 본래 기능과 효율성, 당위성을 놓고 서로가 자신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해당 지역만을 대변하고 있고, 여기에 정치권이 끼어들면서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상황이 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는 ‘서진정책’을 내세우며 호남 민심에 다가섰다가 ‘이제는 별 볼일이 없다’며 내몰라 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과거 한나라당 시절 천막농성 때나 2007년,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메이킹 했던 그가 작금의 호남고속철도 문제를 방관자적 태도로 내버려 두는 걸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출간하면서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킨 게 이를 주도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대망론을 막기 위한 것이다”고 주장하자 청와대는 펄쩍 뛰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대통령은 원칙과 기준에 맞게 처신해왔기 때문에 정치적인 꼼수를 부릴 사람이 아니며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것 이었다’며 반박한다. 서운하다는 얘기다.

이런 반발을 호남고속철에 접목시켜 보면 재미날 것 같다. 청와대가 “세종시 문제는 정치 공학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되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호남고속철을 8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재원을 들여놓고 원칙과 정상화는 내팽겨 치고,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지칭되는 이른바, ‘최·서라인’이 이러쿵 저러쿵 철로를 구부리고, 지역분열을 부추기는 행태는 바람직하냐고 반문하고 싶다.

이제 원칙도 없고, 신뢰도 없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빛바랜 할머니의 모습으로 퇴색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자신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호남 소외의 대명사’가 늘 상 따라 붙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국민이 불행해지고 역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 들어 심리적 마지노선인 ‘30%’아래로 떨어졌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원칙과 소신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말정산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방안이, 증세 없는 복지 파문이,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등이 이익집단 앞에서 쉽사리 무릎을 꿇거나 돌아가면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심사가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지경에 이른 게 아닐까 싶다.

국정의 난맥상이 일찌감치 드러나면서 호남고속철도 마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때문에 호남민들의 저항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서울대 한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현 정부를 ‘무능이냐, 사기냐 ’라는 글을 남긴 게 어찌 보면 연말정산도 그렇지만 호남고속철도에도 그 논리가 들어맞지 않나 싶다. 호남고속철을 반듯하게 펴지지 못 할망정 억지로 구부리려 한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원칙과 신뢰는 추락하게 되면서 더 이상 기댈게 없다.

박 대통령은 레임덕 이라는 ‘그네’를 타다 떨어지지 않기를 호남과 충북도민들은 간절함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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