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으로 한 때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지난해 11월13일 2년6개월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다. 이후 3개월여 동안 언론을 피하며 칩거를 이어가고 있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말이 없었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 용산구 신계동 아파트로 기자가 예고 없이 찾아가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기자의 신분을 확인한 직후 인터폰을 다른 여성에게 넘겼다. 그 여성이 자신을 ‘할머니’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박 전 차관의 어머니로 추정된다. 이후 기자는 박 전 차관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혔고, 여성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5일 저녁 7시40분. 당시의 상황은 이렇다.

기자 : 박영준 전 차관을 만나고 싶어 찾아왔다. 만나 뵐 수 있겠나?
여성 : 지금 자리에 없다.
기자 : 언제쯤 오시나?
여성 : 모르겠다. 지방에 가 있다.
기자 : 서울에 언제 오시나? 날짜를 잡고 오면 만날 수 있겠나?
여성 : 모르겠다. 저는 이 집의 할머니라 잘 모른다.

서로 같은 말만 반복할 뿐 이야기의 진척은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박 전 차관이 한 때 논란을 빚었던 신계동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과 언론을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박 전 차관의 명의로 돼 있는 신계동 아파트는 유죄로 판결 받은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의혹의 핵심 쟁점으로 꼽혔다.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양재 화물터미널 복합개발 사업 인허가 알선 대가로 받은 뇌물이 신계동 아파트 구매에 사용된 게 아니냐는 것. 앞서 박 전 차관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임명받은 2008년 2월 재산을 공개하면서 “일산 집을 판 돈과 형님에게 빌린 3억원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입주는 그로부터 3년 후다. 당초 박 전 차관이 매입한 것은 아파트가 아닌 재개발 주택과 부지였다. 이곳에 세워진 아파트 분양권을 획득한 셈이다.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겐 ‘왕차관’보다 ‘조합원’으로 더 익숙하다. 아파트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50대 여성 A씨는 “조합원 중에 ‘박영준’이란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사람(조합원)이 이 사람(왕차관)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박영준 전 차관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 용산구 신계동의 아파트. 그는 현재 자택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은 “(박 전 차관이) 지방에 있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 사진=소미연 기자
하지만 ‘조합원’으로서의 박 전 차관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구속과 출소에 관심을 둔 주민들이 없었던 것. 사실상 박 전 차관의 낮은 행보를 입증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전 차관은 현재 야권으로부터 MB정부 자원외교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받은 상태다. 이에 따라 여야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서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치권 안팎에서 박 전 차관이 정국의 핵으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뿐만 아니다. 수감 생활 중에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박 전 차관은 공무원연금공단이 퇴직급여 4100만원을 환수할 방침을 통보하자 지난해 8월6일 이를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지 않을 때 뇌물을 받았고, 업무와도 상관없었다”는 게 박 전 차관의 설명이다.

하지만 공단의 입장은 확고하다. 규정에 따르면, 공무원으로 재직 중일 때는 물론이고 퇴직한 뒤에도 업무와 관련해 뇌물 등을 받아 금고형 이상이 확정되면 퇴직금을 환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단 관계자는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소송이 진행 중에 있음을 인정한 뒤 “조만간 선고기일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퇴직금 환수 말고는 다른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에 선고가 나오면 환수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전 차관은 대통령 기획조정비서관(2008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2009~2010년), 지식경제부 제2차관(2010~2011년) 등의 공직을 거쳤다. 퇴직 후 2012년 5월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시행사인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과 함께 1억6478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같은 해 6월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추가 기소돼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또 원전 비리에 연루돼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차 기소돼 추가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1월13일 만기출소 해 오는 20일 출소 100일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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