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1만의 정원을 자랑하는 서울 잠실의 올림픽 체조경기장이 새정치연합의 대의원들로 가득 찼다. 흥행실패라는 당초 평가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어르신, 날씨도 추운데 어찌 이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지난 8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연합 전당대회, 부산지역 대의원이 모인 곳에서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던 한 노인 대의원에게 물었다.

“어이 기자양반, 내 부산에 살면서 평생 여당만 찍었던 사람인기라. 그런데 내 아들이 20년 다니던 직장에서 짤렸는데,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도와주더란 말이오. 우리 지역에서 야당의 대선후보감이 나왔다는데 내 방구석에 박혀 있기만 하면 쓰겠소. 그라믄 안돼제.”

◇ 대의원 사이 뜨거웠던 ‘문재인 대세론’과 ‘당권·대권 분리론’

전당대회 부산지역 대의원이 모여 있는 좌석은 문재인 대세론의 반응이 뜨거웠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영남 대의원 표심 결집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반면 새정치연합의 지역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전라도 지역의 여론은 문재인 후보와 박지원 후보 사이 양분되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박지원이 제 손으로 피를 묻히겠다는데, 문재인은 대선으로 가라고 안허요”라며 박지원을 지지하는 쪽과 “우리 스스로 차기 대통령감을 죽이면 되것소”라는 대세론이 격돌하고 있었다.

▲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대의원들 사이를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
관중석에서 지지후보에 대한 각 지역 대의원들의 응원전이 한창일 즈음, 당 대표 후보들이 등장했다. 환호하는 함성소리만 듣고는 우열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대의원과 권리당원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박 후보에 대한 환호도 컸지만, 국민적 지지를 받는 문 후보를 외치는 목소리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결국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할 듯 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대의원들의 참여로 계획했던 전당대회 시간은 계속 밀렸다. 투표시간이 길어지면서 5시 발표예정이던 당 대표 선출결과는 약속시간을 한 시간 이상 넘긴 6시 20분에 발표됐다. 발표직전 기자석 뒤쪽에는 문 후보가 이겼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돌고 있었다. 그러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사실 문 후보 측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결코 쉽지 않은 선거였다. 국민적 지지도는 높지만, 당 대표 선거에서는 당내 여론과 조직이 더 중요한 법. 당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의 지지를 받는 박 후보는 쉽게 볼 수 없는 상대였다. 오히려 전당대회 현장에서 문 후보 측 인사들이 기자석을 누비며 초초한 모습을 보인데 반해 박 후보 측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감을 죽일 수 없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호남 대의원들에 힘입어 문 후보는 현장투표에서 박 후보를 제칠 수 있었다. 그러나 불과 3.52%라는 근소한 신승이었다. 앞으로 문 후보가 박 후보를 비롯한 호남 민심을 어떻게 달래느냐가 첫 과제가 될 것이다.

◇ 문재인·안철수의 엇갈린 희비, 최고위원 선거

당 대표 선거에 비해 국민적 관심은 적었지만, 같은 날 이뤄진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재미있는 장면이 꽤 많이 나왔다.

▲ 안철수 의원은 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문병호 후보를 적극 지원했지만, 결국 지도부 입성에는 실패했다.
최고위원에 출마한 각 후보들은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최고위원 투표권은 대의원 한 명당 2표씩이 주어진다. 이에 각 대의원들이 지지하는 후보에 한 표를 던지고 남는 표를 얻기 위한 후보들의 경쟁은 뜨거웠다.

압권은 박우석 후보였다.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후보였기에 관중석은 어수선했고, 직전에 있었던 당 대표 후보들의 정견발표를 정리하느라 기자들도 정신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연설자로 나선 박 후보가 무려 1분 가까이 숨도 쉬지 않고 열변을 토해내 관심을 모은 것.

▲ 국민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당일 전당대회 현장에서는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재미있는 장면들이 꽤 연출됐다. 사진은 최고위원에 출마한 전병헌 의원의 지역위원회와 정청래 의원의 지역위원회가 열띤 응원전을 벌이기도 했다.
너무나 큰 목소리와 빠른 열변으로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기도 쉽지 않았다. 다만 “열심히 하겠다. 지지해 달라”는 그의 진심은 제대로 전달된 모양이었다. 이례적으로 관중석 전체에서 환호성이 크게 울렸다. 그리고 이날 대의원 투표에서 박 후보는 8명의 후보 중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기자석에서는 “어? 어!”이런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권리당원 투표와 여론조사에서 고전을 면치못한 박 후보는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문병호 후보의 탈락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문병호 후보는 안철수 의원의 지원을 받는 유일한 후보였으나 안타깝게도 지도부 입성에는 실패했다. 투표시간 동안 안 의원은 대의원들 사이사이를 돌며 “제가 문병호 의원과 참 친합니다”라며 지지를 호소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안 의원 입장에서는 씁쓸한 뒷맛이 느껴질만한 전당대회였다.

한편 전당대회는 당의 축제라고 하는 만큼 현역 의원들부터 연륜을 갖춘 고문들까지 총출동 해 즐거움을 만끽했다. 정치인들은 지지자들과 함께 가수 안치환의 공연을 함께 듣기고 하고, 현장에서 지역 민원 해결의 창구도 됐다.

특히 공연에 나선 가수 안치환은 대의원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저에게는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이 너무 어렵다. 야당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 같다”며 “이제 더 이상 바꾸지 말고 계속 갔으면 좋겠다”며 화합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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