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서민증세 논란 등으로 서민들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고달픈 가운데, 재벌 대기업 3~4세의 승계 작업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재산증식이 더욱 큰 허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5년 재벌계의 화두는 ‘승계’다. ‘맏형’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3세로의 승계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정몽구 회장의 뒤를 이을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승계로 분주하다. 뿐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세대교체는 필수이기 때문에 모든 재벌 대기업에게 승계는 필수 과제다.

▲ 삼성그룹 3세 삼남매. 왼쪽부터 이부진 사장, 이재용 부회장, 이서현 사장.
◇ 2015년 재계 화두는 ‘승계’… 각종 편법으로 ‘눈살’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편법과 꼼수다. 이를 통해 ‘후계자’인 재벌 3~4세들은 엄청난 자산증식 효과를 거둔 뒤 경영권을 승계 받고 있다. ‘부의 대물림’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아끼기 위한 수법까지 활개를 치고 있는 셈이다.

15일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0년대 중반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61억원을 증여받아 현재 9조원에 육박하는 자산을 확보 중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각종 편법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재용 부회장은 약 20년 동안 1,363억원을 투자해 65배가량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 ‘미다스의 손’이란 말도 부족할 정도의 완벽한 투자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부진 사장은 97억원을 2조5,789억원으로 불렸고, 이서현 사장은 73억원을 2조5,634억원으로 불렸다.

여기엔 이용된 ‘수법’으로는 일감 몰아주기, 회사기회 유용, 주식 저가 취득 및 고가 매각을 통한 차익, 전환 차익 등이 대표적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말 그대로 특정 계열사에게 매출을 몰아주는 것을 뜻한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안정적으로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삼성그룹 계열사 직원들의 식사를 담당한 삼성에버랜드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회사기회 유용’은 최대주주라는 지위를 이용해 회사의 사업기회를 차단하고, 자신의 개인회사나 다른 계열사가 이를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그 이익을 가로채는 행위를 말한다.

주식의 저가 취득 또는 고가 매각, 그리고 전환사채 전환가액 조정을 통한 차익 실현 역시 재벌가의 승계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편법’ 중 하나다. 승계 주인공으로부터 주식을 싸게 팔거나 비싸게 사야하는 계열사의 ‘희생’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나열한 편법의 유형들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삼성가(家) 삼남매의 자산 증식과 승계를 도왔다. 상장되지 않은 회사의 지분을 3세가 대거 보유하고, 일감 몰아주기나 회사기회 유용을 통해 이 회사를 키운 뒤 상장을 통해 엄청난 차익이나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한겨레>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에 48억원을 투입해 4조9,500억원 이상의 자산을 확보했다. 여기엔 일감 몰아주기와 주식 저가취득 등의 편법이 동원됐다. 회사기회 유용, 일감 몰아주기, 주식 저가 취득이 종합적으로 동원된 삼성SDS에서는 62억원으로 1조8,854억원을 얻었다.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서도 전환 차익을 통해 20배가 넘는 차익을 실현했다.

이렇게 발생한 엄청난 차익은 자연스레 경영권 승계로 이어진다. 엄청나게 치밀한 전략과 판단, 그리고 상당한 시간 및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졌음에도 삼성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한 배경엔 이 같은 ‘치밀함’이 있었다.

▲ 재벌 3~4세들의 재산 증식 현황.
◇ 사회적 책임에 눈감는 재벌 대기업들

단순히 삼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 굴지의 재벌 대기업 모두 너도나도 이러한 방식으로 승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다음을 준비 중인 현대차그룹 역시 현대글로비스를 승계 작업의 핵심으로 활용 중이다. 정지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에 투입했던 29억원은 현재 자산가치가 3조6,624에 달한다. 역시 일감 몰아주기와 회사기회 유용, 그리고 주식 매각을 통한 차익 실현 등의 방법이 종합적으로 동원됐다. 또한 이노션의 경우 현대차그룹 광고를 전담하며 성장했는데, 이를 통해 정의선 부회장은 12억원을 투자하고도 3,509억원의 자산가치를 거두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광주신세계에 투자했던 41억원이 현재 2,861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해욱 대림 부회장은 투입된 219억원이 17배 이상 불어나 3,850억원이 됐다. 현대그룹의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도 현대글로벌과 현대유엔아이에 6억원을 투입해 43억원으로 불리며 승계 작업을 착착 진행 중이다.

최근 ‘땅콩회항’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한진그룹 3세 삼남매도 빠지지 않는다. 조원태, 조현아, 조현민 삼남매가 유니컨버스와 싸이버스카이를 통해 저마다 2~3배의 자산 증식 효과를 봤다. 이들 삼남매가 투자한 41억원은 현재 114억원의 자산가치로 불어났다.

이들 모두 자산을 늘리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 또는 회사기회 유용의 수법을 썼다. 그리고 이렇게 무럭무럭 키운 회사는 향후 승계 작업에서 자금 및 지분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이들은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의롭지 않다면 사회를 해치게 된다. 담배에 붙는 세금이 올라 금연을 강요받는 서민들의 입장에선, 적게는 몇 배, 많게는 수천 배에 이르는 차익을 앉아서 실현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편할 수 없다. 과연 그만한 일을 했는지, 또 합당한 세금을 냈는지 의문부호가 붙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인력을 제공한 것도, 소비를 해준 것도 결국 우리 사회다. 그리고 그 사회가 발전하고, 다시 기업이 발전하는 ‘선순환’을 위해선 그에 맞는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세금이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돈’ 때문에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부모님 덕에 손쉽게 엄청난 돈을 버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모두 같은 출발선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을 위해 정해 놓은 법과 원칙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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