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공사-청계천 출신 가든파이브 임대 상인, '특별임대연장' 둘러싸고 갈등

▲가든파이브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서울시 산하 공기업 SH공사가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에 조성한 복합쇼핑센터 ‘가든파이브’는 사연이 많은 곳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상권과 삶의 터전을 잃은 청계천 상인들을 위해 지어진 이 상가는 지난 2010년 야심차게 개장했지만, 높은 공실률과 침체된 상권으로 ‘유령상가’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부푼 꿈을 안고 입주했던 많은 청계천 상인들은 큰 빚을 떠안은 채 빈손으로 내쫓기듯 ‘가든파이브’를 떠나갔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상인들 역시 벼랑 끝 처지에 몰려 있긴 마찬가지. ‘특별 분양임대차’ 기간이 지나면서 일반분양 조건으로 재계약을 할 처지에 놓인 이들은 “현재의 경제 상황으론 감당할 수 없다”며 SH공사에 기존 조건으로의 임대 연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 변창흠 SH공사 사장이 전향적인 의지를 밝혔지만, 여전히 사태 해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 “황무지 같은 곳에서 5년을 버텼는데, 계약만료 통보라니...”

지난 18일 오전 6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박원순 시장 공관 인근에는 청계천 상인 출신 가든파이브 분양임대상인들이 피켓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들은 ‘서울시 말 듣다 워킹푸어 된 청계상인, 특별임대 5년 연장으로 구제하라’ 등의 피켓을 든 채 박원순 서울시장을 기다렸다. 

시위에 참여한 우승남 가든파이브협동조합 이사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년간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은 ‘황무지’ 같은 곳에서 불 밝히고 장사를 했는데, 대형유통업체가 입점하니 청계천 상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의 사연을 알기 위해선 ‘가든파이브’의 지난 5년간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승남 가든파이브협동조합 이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청계천 상인 이주 대책으로 지어진 가든파이브는 ‘동남권 최대 물류 유통단지’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2008년 첫 입주를 시작해 2010년 개장했다. 당시 SH공사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청계천 상인들에게 ‘특별분양·임대’ 혜택을 줬다. ‘가든파이브 점포’를 조성원가로 분양하고 임대료도 저렴하게 책정하며 임대기간 내에는 수시로 분양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이다.

▲ 가든파이브 테크노관 내 공실과 천이 덮여진 채 영업을 하지 않는 점포들의 풍경.
하지만 가든파이브는 최악의 공실률에 시달렸다. 당초 예상보다 높아진 분양가와 비활성화된 상권에 청계천 상인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 초기에는 1,500명 정도가 계약을 했지만, 이마저도 상당수가 매매를 통해 곧바로 빠져나가면서 실제 700여명 정도가 가든파이브에 자리를 잡았다. 상가가 철거되거나 상권 침체에 직격탄을 맞는 상인들이 주로 이주했다. 

이처럼 분양률이 저조하자 SH공사는 ‘다점포 분양 임대 정책’을 시행했지만, 청계천 상인들은 "이것이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된 배경이 됐다"고 토로했다. 대출 빚으로 다수의 점포를 분양받거나 임대받는 상인들은  시간이 지나도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으면서 ‘삼중고’에 시달렸다. 장사가 안 돼 수익이 없는 가운데, 다달이 ‘관리비’와 ‘대출 이자’, 월세 등의 부담에 시달렸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생활고에 목숨을 끊는 상인을 비롯해 임대료 체납으로 상가에서 쫓겨나거나 명도 소송을 진행하는 점포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수많은 점포가 경매에 들어가면서 상인들은 ‘신용불량자’가 된 채 빈손으로 쫓기듯 떠났다. 이렇게 떠나간 상인들 상당수는 길거리를 전전하는 노점상이 되거나, 일용직 근로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알려졌다. 

SH공사는 지난 5년간 NC백화점 등 대형유통업체를 유치해 ‘상권활성화’에 나섰으나 큰 실효성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대형유통업체에게 각종 특혜를 줬다는 의혹만 사면서 상인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이런 상황이 5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가든파이브는 ‘유령단지’ ‘청계천 개발의 저주’ 등의 오명에 시달렸던 것이다. 

◇ “SH공사가 제시한 조건, 사실상 나가라는 통보”

이런 가운데, SH공사가 올 초 현대백화점의 프리미엄 아울렛 유치에 성공하면서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청계천 이주 상인들에게 1월 말로 ‘5년의 특별공급 임대계약’이 끝나니 ▲분양전환 ▲특약 조건 하의 임대 재계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하지만 임대 상인들은 이같은 제안이 사실상의 ‘퇴거’를 의미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5년간 상가 미활성화로 인해 장사를 하지 못해 임대상가를 분양으로 전환할 경제적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재계약을 하더라도 청계천 이주상인으로서 보장받았던 각종 권리들이 사라지는 등 특약조건이 걸려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 서울시장 공관과 SH공사 공사 앞에서 '특별임대 5년연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청계천 출신 가든파이브 임대 상인.

그러나 SH공사 측은 일반 임대 상인들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들며 “청계천에서 이주한 입주상인들에게 더 이상의 혜택을 부여할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이에 상인들은 이달 초부터 서울시장 공관과 SH공사 앞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상인 박모 씨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년간 상권을 활성화시킬 것이란 SH공사 말만 믿고, 힘든 상황에서도 버텨왔다. 임대료를 제대로 못 내 사채 빚까지 끌어다가 쓰는 형편이지만, 상권이 활성화되면 그동안의 손해를 메울 수 있을까 해서 버텼다. 그런데 상권이 살아나나 싶으니 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특별임대 조건을 5년만 연장해달라는 것이다. SH공사는 일반 임대 상인들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들며 안 된다고 하고 있지만, NC백화점, 엔터식스, 현대백화점에서 임대기한을 10년으로 주지 않았나”며 “원천적으로 가든파이브는 청계천 이주 상인들을 위해 조성된 것이다. 초기 분양이 안될 때는 통 사정을 하더니, 이젠 대형 유통업체를 유치하니 얼굴을 바꾸고 있다”고 분노했다. 

◇ 변창흠 SH공사 사장 사태 해결할까 

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변창흠 SH공사 사장은 최근 상인들과 만나 사태 해결의 의지를 보였다. 우승남 가든파이브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 18일 SH공사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중에 변 사장이 찾아와 ‘원천적으로는 상권 활성화하지 못한 우리 책임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장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만큼,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태 해결을 위해선 갈 길이 멀어 보인다. SH공사 관계자는 “변창흠 사장이 출근길에 상인들과 대화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공사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며 “지난 5년간 상권 비활성화로 상인들의 어려움을 겪은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 임대 상인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더 이상 ‘혜택’ 제공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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