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 기자실에서 금융개혁 방향 및 추진 전략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3대 전략, 6대 핵심과제, 18개 세부과제를 우선 설정했다고 밝혔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임계치 다달았다” vs “관리가능한 수준”

최근 ‘가계부채’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을 비롯해 맥킨지에서도 대한민국의 가계부채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관리가능한 수준’이라며 ‘기우’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과연 정부의 말처럼 염려할 수준은 아닌 것일까.

◇ 경제성장률 보다 가계부채 증가속도 더 빨라…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2014년 4·4분기 중 가계신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는 총 1,089조원로, 전년대비 67조원이 늘었다. 대한민국 인구를 5,000만명으로 잡을 경우, 국민 1인당 약 2,1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1분기 중으로 가계부채가 1,100조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 주 : 1) 예금은행(은행신탁 포함), 종별대출은 신탁 제외. 2) 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및 은행 대출채권 양도 포함, 기양도분에 대한 상환액은 차감(자료; 한국은행, “월중 금융시장 동향”, 보도자료)출처=국가미래연구원 <가계대출과 가계부채:최근 동향과 향후 대책에 관한 논의> 보고서

주목되는 부분은 ‘가계부채 증가속도’다.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모두 전년 동기에 비교해 6.6%씩 증가했으며, 이는 지난해 3분기 경상성장률(3.3%)의 2배에 이른다. 경제 규모가 커지는 속도보다 가계 부채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는 뜻이다.

가계부채가 이렇게 증가하게 된 것은 저금리 환경에서 지난해 8월 초 시행된 LTV/DTI 규제 완화 등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 정책으로 주택 매매(거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사정이 이쯤되면서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계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은 최근 ‘가계대출과 가계부채’ 보고서를 통해 “가계부채가 임계치에 육박했다”고 경고했고,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 역시 한국을 세계 7대 가계부채 취약국에 포함시켰다.

▲ 자료=국가미래연구원 <가계대출과 가계부채:최근 동향과 향후 대책에 관한 논의> 보고서

이에 대해 정부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부채의 담보 대부분이 ‘부동산’이라는 이유다. 대출의 70~80% 가량이 주택담보대출로, 대부분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있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 이상 가계부채가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는 논리다.

실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후보자 청문회 당시 “가계부채는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고 실제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연체비율 등을 볼 때 시스템 리스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측도 매킨지 분석에 대해 “양적 분석에 그친 조사로, 가계부채를 질적으로 접근하면 위험도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부채의 70% 가량이 소득 상위 40%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상환 여력이 큰 집단에 부채가 쏠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 시장에서는 부동산 자산가치가 갑자기 폭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 이상, 자산의 담보가치가 부채 총량보다 더 많아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 가계대출 성격의 변화 ‘주목’

하지만 전문가들을 비롯한 외부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가계대출을 ‘질적’으로 접근해도 문제의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 자료=국가미래연구원 ‘가계대출과 가계부채’ 보고서

국가미래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하면서 “최근 가계대출을 일으키는 목적 중에는 주택 거래 이외의 용도가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언급했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사업자금이나 생활자금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한 것이다.

결국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문제는 ‘가계소득’ 문제와도 맥이 닿아있다. 빚이 많아도 그것을 갚을 소득이 뒷받침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계가 소득으로 빚을 갚을 수 있는 여력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실제 부채의 감당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60%를 넘어 OECD 평균(135.7%)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쓸 수 있는 돈 보다 갚아야 할 부채가 1.6배나 많다는 얘기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싼 이자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빚 갚느라 쓸 돈이 없어 소비를 못하고, 이것이 극심한 내수부진과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디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이렇게 급증한 가계부채는 그 취약성이 악화돼 결국 ‘폭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게 될 경우, 외국자본 유출 방지를 위해서라도 우리 역시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가 오른다면 ‘취약가구’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계대출 증가가 소비 증대로 연결됐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오히려 소비 여력을 제한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여기에 미국이 올해 중 기준 금리를 올리게 될 경우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커져 금융안정 면에서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2014년 4·4분기 중 가계신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는 총 1,089조원로, 전년대비 67조원이 늘었다. 가계부채가 이렇게 증가하게 된 것은 저금리 환경에서 지난해 8월 초 시행된 LTV/DTI 규제 완화 등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 정책으로 주택 매매(거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함.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계부채 관련한 대책이 미온적이고 대증적 요법에 그친다고 비판하고 있다. 당장 가계부채가 늘어나지 않게 하면서 위험가구의 부채관리에 특히 신경을 써야할 상황이지만, 정부는 대출규제를 완화하고 이번에 금리까지 내려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금융당국은 가계부채가 아직 ‘리스크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양(量) 보다는 질(質)’에 초점을 두겠다는 계획이다. 늘어나는 가계대출 규모에 브레이크를 거는 대신 위험 가계대출을 관리하겠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장 불붙은 가계대출이 제어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앵무새 대책 반복… 임종룡 금융위원장에 모아지는 시선

최근 금융위원회 수장으로 오른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0일 치러진 ‘금요회’의 첫 주제를 ‘가계부채’로 정했다. ‘가계부채’를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현안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특히 임종룡 위원장은 정부기관 간 가계부채 관리협의체를 통한 협업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가계부채 관리협의체를 통해 “MRI를 찍듯이 가계부채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정책 공조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임종룡 위원장이 가계부채 문제 해소를 위해 내놓은 ‘부처간 공동대응’은 3년 전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내놓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한국경제 뇌관으로 떠오른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한동안 수그러들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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