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중)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까지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윤병세 장관은 "풍부한 내용의 발표문이 나온 게 진전이고 새로운 디딤돌이자 터닝포인트"라며 발표문 도출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정시역사(正視歷史) 개벽미래(開闢未來)’-역사를 바로 보고 미래를 연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외교장관회의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3국 관계 정상화는 이 8글자로 요약된다”고 말하면서 역사인식 문제가 3국간 최대 쟁점임을 강조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21일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갖고 협력관계 복원과 3국 정상회의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각국의 외교수장들은 3국 협력이 동아시아 평화의 중요한 요소라는 공동 인식을 가지고 빠른 시일 내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하는 발표문을 도출해냈다.

◇ 한·중·일 극명한 역사인식 차, 정상회의까지 험로 예고

이번 3자 회담은 지난해 11월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이를 토대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6자회담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강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동아시아 안보는 다자협상으로 풀어 내야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전격적인 제안에 지난 2012년 4월 이후 중단됐던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는 3년만에 재개될 수 있었다.

그러나 3국 정상회담과 관계회복에는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역사인식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장관 회담 직전인 20일까지도 아베 총리는 “국제법상 침략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정해진 것은 아니”라며 과거 일본의 침략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뿐만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극우적인 행보를 보이며 한국과는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켰다. 더구나 중국과는 난징대학살 등 역사문제와 함께 센카쿠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의 영토분쟁까지 있어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한국이 동아시아 협력관계를 위해 역사문제를 분리해 대응한다고 해도 중일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는 요원한 일인 셈이다.

▲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역사를 바로 보고, 미래를 연다"고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 전환을 선결과제로 내 놓으면서 아베 총리의 입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내달 26일 미국 의회 합동연설이 예정돼 있고, 올해 8월에는 아베 담화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사진=AP/뉴시스>
이번 3국 외교장관 회의 직전에 있었던 중일 외교장관 양자회담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두고 마찰이 있었다. 일본 교도통신이 지난 22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 왕이 부장은 전후 70년 담화와 관련,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반성을 명기하도록 요구함과 동시에 ‘댜오위다오’는 중국 영토라고 정당화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양국의 첨예한 대립으로 시간이 지체돼 3국 회의는 당시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시작했다.

◇ 아베의 발언에 쏠리는 시선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 문제가 떠오른 만큼, 그의 입장에 초점이 모아진다. 내달 26일 아베 총리는 미국을 방문해 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의회 합동연설이 예정돼 있고 8월에는 과거사와 관련해 아베 담화를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과 사과가 있다면 연내 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베 총리가 과연 역사 문제에 전향적 인식을 보일 것인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의 국내 정치적 입지는 매우 안정적인 상황이다. 아베노믹스의 실패에 따른 내각 총사퇴와 이어진 총선에서 일본인들은 아베 총리를 재신임 했다. 오히려 ‘우클릭’에 더 강한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일본을 움직일 수 있는 미국의 입장도 다소 불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의회 합동연설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묵시적으로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 미국의 의회에서 연설을 한다는 것은 미국이 외국 정상에게 보내는 최고의 예우다. 미국과의 관계가 가장 좋았던 고미즈미 일본 총리도 이 자리에 서고자 했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과거사 문제로 합동연설이 불허된 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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