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충남 서산시 지곡면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웠던 유년시절과 서울 상경의 성공 발판을 마련하기까지 주 활동무대였던 해미면이 제2의 고향으로 통한다. 그의 지난 세월을 지켜본 해미면 고향 사람들은 동정론이 우세하다.

[시사위크|충남 서산·태안=소미연 기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에 고향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가난을 어깨에 짊어진 청년 성완종의 자수성가 스토리를 곁에서 지켜봐왔던 만큼 고향 내 동정론이 우세하다. 특히 서산장학재단에 대해선 높게 평가했다. 서산장학재단은 성 전 회장이 1991년 사재 31억원을 출연해 설립된 장학재단으로, 지난 25년간 학생 2만8000명여에게 장학금 300억원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 장학재단으로 잃었던 인심 되찾아 “좋은 일 많이 했다”

성 전 회장과 서산시 해미면에서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동갑내기 A씨는 15일 기자와 만나 “완종이가 기업가로 자리 잡고 고향을 떠난 뒤 선후배를 등한시했다. 하지만 장학재단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고향뿐 아니라 지역 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장학재단 아니었다면 일부만 완종이를 알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상 성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장학재단 설립 전후로 극명히 나뉘고 있었다. 기자가 이날 만난 해미면 읍내리 주변 사람들 모두 “완종이가 고향을 위해 특별히 한 일은 없다”면서도 “장학재단으로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입을 모았다.

▲ 성완종 전 회장은 유언을 통해 서산장학재단 사업 유지를 당부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현재 장학재단은 성 전 회장의 고향 서산시 해미면에 위치한 옛 대아건설 사무실을 활용 중이다. / 사진|서산=소미연 기자
하지만 성 전 회장이 충청권의 유력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것에 대해선 머리를 갸웃한다. “충청포럼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에서 성 전 회장을 유력 정치인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게 고향 사람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다만,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 전 회장을 ‘모르는 사람’으로 부인한 데 대해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이 총리가 성 전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는지 알 순 없지만, 상식적으로 서로 모르고 지냈을 리 없다는 것. 성 전 회장이 지난해 5월 선거법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으나 같은 충청권의 국회의원이었고, 서산과 태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서로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태안군에서 만난 택시운전기사 한모 씨도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증명하고 있는데, 이 총리가 모르쇠로 일관할 일이 아닌 것 같다”면서 “솔직히 이 총리가 성 전 회장을 모르는 사람 취급했던 것부터 잘못됐다. 처음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밝혔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겠는가. 설마 하면서도 이 총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 성완종 전 회장의 첫 사업인 화물영업소도 바로 고향인 해미면 읍내리에서 열었다. 농산물을 서울에 내다 팔아야 할 농민과 트럭의 차주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알선소다. 지금은 번지만 남았고, 해당 건물은 바뀌었다. / 사진|서산=소미연 기자
반대로 일각에선 성 전 회장에 대한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말 잘못하면 남은 형제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말을 아끼고 있지만, 불편한 속내가 얼굴빛으로 드러났다. 해미면에서 만난 B씨는 “완종이 얘기로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잔뜩 있어도 (성 전 회장의 동생인) 우종, 석종, 일종이 모두 우리 후배아니냐. 그런데 무슨 얘기를 더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손을 저었다.

◇ 나라 혼란 가져온 ‘성완종 폭로’에 불편한 기색도

이와 관련, 성 전 회장을 가장 잘 알고 지냈다고 밝힌 C씨는 “완종이의 폭로가 문제가 됐다”고 부연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 전경환 인맥으로 그때부터 장차관이라든가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이 그 사람(성 전 회장)의 돈을 안 먹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묻고 깨끗하게 끝냈어야 남은 가족들이 사는데, 완종이가 남긴 의혹이 도리어 역효과가 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장학재단에 대한 성 전 회장의 애착은 남달랐다. 생전 성 전 회장은 장학재단 사업으로 고향을 자주 방문했다. 현재 장학재단은 옛 대아건설 사무실을 활용하고 있다. 오늘의 경남기업 모태가 된 곳으로, 성 전 회장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다. 고향사람과 특별히 접촉한 사람은 없었지만, 장학재단 관계자들과는 해미면 인근의 가야산을 함께 오르는 등 가깝게 지냈다는 후문이다. 그가 남긴 유서에도 ‘어머니 곁에 있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장학재단의 유지를 당부하는 글이 적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