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장자의 <열어구>편에는 중국 송(宋)나라의 조상(曺商)이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와서 장자를 만나 자기자랑을 하는 이야기가 있네. “이렇게 비좁고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군색하게 짚신이나 삼고, 버썩 마른 목에 누런 얼굴로 사는 것. 이런 일에 나는 소질이 없소. 수레 만 대를 가진 임금을 한 번 일깨워 주고, 수레 백 대를 받아 오는 일. 나는 그런 데 장기가 있지.”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장자가 대답하네. “진나라 왕이 병이 나서 의원을 부르면, 종기를 따서 고름을 빼내 주는 의원에게는 수레 한 대를 주고, 치질을 핥아서 고쳐 주는 의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준다는데, 치료할 곳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수레를 더 많이 준다고 하더군. 자네는 치질을 얼마나 고쳐 주었기에 그렇게 많은 수레를 얻었는가. 자네, 물러가게.” 장자의 대답이 통쾌하지 않는가?
 
지난 50여 년 동안 우리나라가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면서 ‘잊어버렸거나 잃은 것들’이 많지만, 나는 그 중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염치’라고 생각하네. 염치(廉恥)의 사전적 정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일세. 그러니 ‘염치가 없다’는 말은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걸 뜻하지. 염치가 없는 사람은 맹자가 말했던 ‘수오지심’이 없는 몰염치하고 파렴치한 사람이야.

이른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나. 내 눈에는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염치’를 잃거나 잊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특히 많은 부와 권력이 따르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기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체면이나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일세.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상대가 누구이든 기꺼이 ‘치질을 핥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지난 1월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후 병역 면제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교수 채용 의혹, 논문 표절 의혹, 언론 외압 의혹 등 온갖 의혹에 휩싸였던 이완구 총리를 보게나. 그의 지난 삶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출세를 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의혹 백화점’이었네. 그런 사람이 어렵게 총리가 된 후 첫 대국민 담화가 ‘부정부패와의 전쟁’ 선포하더군.

그의 변신에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네. “당면한 경제 살리기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패를 척결하고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 과거부터 오랫동안 누적돼 온 부정비리, 비정상적 관행과 적폐 등 우리 사회의 암적인 요소들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참 측은한 생각이 들더군.

권력이 그렇게 좋은가? 청와대 오찬에서 ‘대통령 각하’라는 전근대적인 호칭을 세 번이나 사용했던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뻔뻔함에 두 손 들고 말았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있는 고질적인 적폐와 비리를 낱낱이 조사하고 그 모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여 엄벌할 것”이라고 큰소리치던 분이 취임 63일 만에 사정대상 1호로 지목돼 결국 사퇴라니… 씁쓸하네. 

이런 총리를 감싸는 또 다른 염치없는 국회의원을 보게나. 이 분에게는 국무총리의 온갖 의혹과 비리가 사람이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과오 정도로 보이는가 보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총리의 사의 표명이 ‘현대판 마녀사냥’과 ‘의리 없는 정치판’ 탓이라고 언론과 야당을 나무랐더군. 그러면서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도 간통하고 온갖 부정청탁에 뇌물에 나쁜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세종대왕이 이분을 감싸고 해서 명재상을 만들었다”는 말을 했다는군.

이 사람 전직이 검사라는데 공부는 제대로 한 건가? 이 분은 내가 자네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2013년 11월 11일)에도 등장했던 주인공이야.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 파리의 교민과 유학생들을 상대로 “이번에 파리에서 시위한 사람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라고 협박했던 그 새누리당 의원 생각나지? 그때도 그가 우리나라의 최고 학부에서 법을 공부한 검사 출신인지 의심스러웠네.
  
박경원 시인의 <짤막한 노래>라는 시가 있네. “정직하고 부드러운 빵/ 아름다운 푸른곰팡이를 피워내는군/ 자신이 썩었음을 알려주는군.” 빵에 푸른곰팡이가 핀다는 건 그 빵에 방부제가 첨가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그래서 시인은 그 빵을 “정직하고 부드러운 빵”이라고 부르네.

난 저 짧은 시를 읽으면서 가끔 헛생각을 하네. 우리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이 썩으면 이마나 얼굴에 ‘추한 푸른곰팡이’가 피었으면 좋겠다는 우스운 망상 말일세. 부정부패를 저지르거나 난폭한 언어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의 이마나 얼굴에 푸른곰팡이가 핀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곰팡이가 무서워서 착하고 정직하게 살 것 같은데… 순진한 생각이라고? 그렇게 되면 그 ‘푸른곰팡이’가 부나 권력의 상징이 되어 누구나 갖고 싶어 할 것이라고? 염치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만, 그래도 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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