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오롱이 첨단 섬유소재인 아라미드를 둘러싸고 미국 듀폰과 벌여온 법정 싸움을 6년 만에 마무리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된다.(사진-YTN 사이언스 방송화면 캡처)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코오롱인더스트리(이하 코오롱)가 듀폰과의 지루한 소송전을 끝낸다. 코오롱은 듀폰과 ‘특허침해’를 놓고 지난 6년간 길고 긴 법정다툼을 벌여왔다. 소송의 핵심은 코오롱이 듀폰사의 ‘케블라(아마리드 섬유의 브랜드명) 제조에 관한 영업비밀’을 훔쳐갔다는 것.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던 이들의 소송은 코오롱이 듀폰에 약 3,0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국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6년간의 ‘특허소송’을 통해 과연 코오롱이 잃고, 또 얻은 것은 무엇일까.

◇ 3,870억원에 마무리 지은 6년 소송

이들의 길고 긴 악연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미국 화학업체 듀폰은 미국 버지니아주 법원에 코오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케블라의 영업비밀 149건을 침해당했다’는 것이 골자. 케블라는 듀폰사가 1973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아라미드 섬유의 브랜드명으로, ‘꿈의 섬유’라고도 불리 아라미드(Aramid)는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5배나 단단해 총알도 뚫지 못하는 고강도 첨단소재다.

앞서 코오롱은 2005년 ‘헤라크론’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아라미드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듀폰사는 “코오롱이 듀폰에서 퇴사한 엔지니어를 고용해 아라미드 섬유 관련 기술과 영업비밀 등을 빼돌렸다”며 2009년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듀폰은 코오롱에 대한 ‘특허침해 소송’과 더불어 코오롱에서 채용한 전직 직원 마이클 미첼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하기도 했다. FBI는 미첼을 기소했고, 이듬해 3월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미첼의 혐의를 인정, 18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애초 “듀폰 측이 주장하는 영업비밀들은 이미 공개된 것”이라며 문제될 것 없다던 코오롱은 미첼의 구속 이후 수세에 몰리게 된다. 2011년 9월, 1심 배심원단이 듀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시 미국 법원은 코오롱에 약 1조원(9억1,990만달러) 배상금은 판결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항소심 재판부는 “코오롱에 유리한 증거가 배제됐다”며 재심을 명령했고, 최근엔 이들이 소송 대신 ‘합의’를 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6년동안 진행돼온 듀폰과 코오롱의 특허침해 소송은 일단락 됐다. 4월 29일 블룸버그와 재계 등에 따르면 코오롱은 특허침해 논란과 관련 듀폰에 2억7,500만 달러(약 2,860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검찰에 벌금으로 8,500만달러(910억원)을 내게 된다. 모두 3억6,000만달러(3,870억원)을 합의금 및 벌금으로 내게 되는 셈이다. 코오롱은 듀폰에 대한 민사소송 합의금과 벌금을 향후 5년간에 걸쳐 분납(총 3,870억원)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 소송 리스크 털었지만, 여전히 남은 상처

업계에서는 일단 코오롱이 ‘소송 리스크’를 털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코오롱은 그동안 듀폰과 소송을 진행해오면서 변호사 비용을 비롯해 대외 신인도 추락에 따른 여파를 직접 겪어 왔다. 하지만 소송 종결로 인해 리스크 축소 및 이와 관련된 비용절감이 기대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소송의 핵심이 됐던 ‘아라미드’ 섬유를 세계 시장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아라미드는 듀폰, 일본 데이진, 코오롱 등만 생산하고 있다. 아라미드는 방탄복 및 방탄헬멧, 고성능 타이어, 브레이크 마찰재, 광케이블 보강제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활용도가 여전히 무궁무진해 미래 먹거리로서의 전망이 밝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6년에 걸친 소송이 종결되는 데 따른 기업가치 제고효과가 더 크다”며 “아라미드 섬유시장 공략이 본격화되면 영업이익이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6년 소송을 통해 생긴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코오롱 입장에선 ‘산업스파이’라는 오명을 쓴 것이 뼈아플 전망이다. 사실 코오롱과 듀폰의 소송은 국내에선 ‘특허침해’ 정도로 알려졌지만 미국 현지에선 ‘산업스파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정도로 민감하게 다뤄졌다. 당시 코오롱과 듀폰의 소송을 담당했던 닐 맥브라이드 버지니아주 검사는 “코오롱은 대규모 산업스파이 행위를 통해 ‘헤라크론’ 섬유를 시장에 선보여 케블라와 경쟁했다”면서 “산업 스파이는 기업 전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양사의 ‘합의’는 엄밀히 말하면 코오롱이 산업스파이 행위를 통한 기술침해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생각처럼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산업기술 유출범죄’를 ‘경제 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의 범주에서 다루는 미국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실제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을 상대로 한 타국의 기업비밀 ‘산업스파이’ 행위에 대해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2월 20일(현지시간) 백악관이 발표한 ‘기업비밀 유출 방지 전략 보고서’ 중 주요 교역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현황을 검토해 발표하는 ‘스페셜 301조 보고서’에는 코오롱과 듀폰 간의 첨단섬유 기술 분쟁이 지적재산권 침해 사례 모음집의 첫 페이지에 실렸다. ‘스페셜 301조’에 의해 불공정 무역관행 국가로 지정되면 미국 내 수입 제한, 높은 관세율 적용 등 보복조치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지난 2013년 5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제3회 국제 지식재산권 & 산업보안 컨퍼런스’에서도 필스버리 윈트롭 쇼 피트먼 LLP의 데이비드 시너먼 파트너 변호사는 “경제스파이법(1832조)의 적용 예는 한국의 코오롱과 외국기업 듀폰사와의 케블라 제조 기술 관련 소송”이라며 “검찰 측은 코오롱이 이 섬유를 제조하기 위해 듀폰 직원을 고용해 7년 동안 스파이활동을 벌인 혐의를 주장했고, 코오롱은 경제스파이법(1832조) 위반 혐의로 기소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합의를 통해 소송이 종결되긴 했지만, 지난 6년간 코오롱을 향했던 ‘산업스파이’ 주홍글씨가 쉽게 지워질 지 관심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한편  6년간의 지루한 소송전이 종결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4월 29일 코오롱과 코오롱생명과학은 상한가를 기록했고, 당사자인 코오롱인더스트리도 9.42%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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