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자네 혹시 2013년에 타계한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를 아는가? 교보문고가 작년 8월에 집계한 '2004~2014년 시집 판매 순위 톱20'에 외국 시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그녀의 시집 《약해지지 마》가 9위에 올랐었네. 할머니는 92세에 아들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98세에 첫 시집을 펴냈다고 하더군. 《약해지지 마》는 일본에서만 160만부가 넘게 팔린 초베스트셀러가 됐다네. 죽기 2년 전인 2011년에는 자신의 100세 생일을 기념해서 《100세》라는 두 번째 시집을 펴냈는데, 사전주문만 30만부가 넘었다고 하네. 먼저, 그녀의 <약해지지 마>라는 시를 읽고 계속 이야기하세. 불행한 삶을 살았던 시바타 도요가 평범한 언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약해지지 마라’고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시일세.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그런데 왜 다른 나라의 ‘할머니 시인’을 이야기 하냐고? 좀 뜸금없어 보이는가? 내가 이순의 나이에 사진공부를 시작했다고 오래 전에 말했었지? 드디어 이번에 함께 공부했던 급우들이랑 <천천히 깊게 느리게: 사진을 심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전을 열고 사진집까지 발간하게 되었네. 이번 전시에 참가하는 친구들 중에는 19살 먹은 소녀도 있는데 내 나이가 너무 많아 좀 쑥스럽기도 하고, 내 사진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 함께 전시에 참가한 젊은 사람들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이 나이에 젊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것이니 약해지지 말라고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던 저 할머니 시인이 생각나더군.   

무슨 일이든 너무 늦게 시작하면 힘이 드는 건 사실이네. 나이 들면 늙고, 늙으면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로 체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약해지는 게 당연하지. 간혹 그걸 부정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만 힘들고 추해질 뿐일세. 조선후기의 유학자이자 실학자인 이익도 ‘성호사설’에 ‘노인이 겪는 열 가지 좌절(노인십요 老人十拗)'을 소개하고 있네.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에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에는 눈물이 나며,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하면서 눈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는 없고 모두 이빨 사이에 끼어있고, 흰 얼굴은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희어진다.” 남의 일만 같지 않지? 아직은 저런 나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머지않아 자네도 저런 신체적 증상들에 시달리게 될 걸세. 아무리 왕후장상이라도 지금까지 세월을 이긴 사람은 없었네. 이기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비참해질 뿐이야.

그럼 우리가 다가오는 노년을 어떻게 보내는 게 현명할까? ‘백세 시대’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 어떻게 잘 늙고, 잘 죽을 수 있을까? 요즘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웰에이징’하고 ‘웰다잉’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게 잘 늙어가는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며칠 전에 친구들에게 함께 모여 책을 읽자고 제안했었지. 반응은? 시큰둥하더군. 그래서 나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자고 말했네. 이 제안 또한 별로 탐탁지 않은 표정들로 듣고 흘리더군. 아직 때가 아니라나…

나는 ‘늙음’이 ‘나이의 문제’가 아니고 ‘습관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네. 스스로 늙었다고 치부하고, 그래서 이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자포자기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자식들과 사회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노년’은 지루하고 잔인한 세월일 수밖에 없네. 하지만 무엇인가에 열중해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것들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 노년을 자아 완성의 마지막 과정으로 생각하고 계속 배우는 자세로 늙어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젊음의 샘을 간직하고 사는 ‘청년’이라고 생각하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연과 꽃을 좋아하고, 어떤 식으로든 아름다움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지.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날마다 호기심과  열정을 갖고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걸세.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니라고? 물론이지. 하지만 나는 누구나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네.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네.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다가 돌아갈 것인가를 숙고하고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내 생각이네만, 이왕이면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면서 배우는 영원한 ‘학생’으로 살다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한 번 살아볼 만한 삶 아닌가? 

오늘은 시바타 도요의 <길 – 당신에게>라는 시로 마무리하고 싶네. “좋아하는 길이라면/ 울퉁불퉁한 길이라도/ 걸어갈 수 있어/ 힘들어지면/ 잠시 쉬고 하늘을 보고/ 쭉/ 걸어가는 거야// 따라오고 있어/ 당신의 그림자가/ 힘내/ 하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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