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제11회 ‘철강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권오준 회장(앞줄 가운데).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화창한 봄날씨가 이어진 지난 9일, 한국철강협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제11회 ‘철강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석했다. 경기도 미사리 경정공원에서 열린 이번 행사엔 30여명의 국내 철강업계 인사들과 임직원 및 일반 참가자 4,000여명이 북새통을 이뤘다. 권오준 회장 역시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5km를 완주하며 철강업계의 화합을 위한 이번 행사를 주도했다.

이날 마라톤 행사의 주제는 ‘튼튼해요 정품철강 안전해요 대한민국’이었다. 산업현장 중에서도 유독 많은 재해가 발생하는 철강업계인만큼, 이날 행사에서도 ‘안전’이 강조됐다.

권오준 회장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안전과 관련된 다양한 퍼포먼스와 행사에 직접 참여했고, 배번표에는 ‘안전한 대한민국 앞장서는 철강산업’ 등 사전에 온라인 공모를 통해 선정된 문구가 삽입됐다.

권오준 회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건설 안전, 품질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선진사회로의 진입은 불가능하다”며 “철강업계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우수한 철강제품을 공급해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에 앞장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따뜻한 봄날 전해진 비극적인 소식

역시 따스한 봄 햇살이 내리쬔 지난 10일. 하지만 이날은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소속 50대 노동자 양모(50) 씨가 스스로 목숨을 거둔 채 발견된 것이다. 양씨는 전남 광양의 자택 인근 공원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양씨가 속한 사내하청업체는 이지테크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지그룹의 계열사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산화수장비를 운용·정비하는 용역업무를 담당한다.

양씨는 지난 2006년 5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이지테크 분회를 설립하고, 분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곧장 사측의 강도 높은 압박이 이어졌고, 양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료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마지막까지 양씨와 함께했던 2명의 동료 역시 보직이동 등을 동원한 사측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금속노조를 탈퇴해야했다.

양동운 포스코 사내하청지회장은 “결국 그 배후엔 포스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청인 포스코가 사내하청 노조를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에 하청업체들은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노조 가입 및 활동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하청 평가 기준엔 ‘조직안정’이란 명목이 20%를 차지하고 있는데,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을 경우 최하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끝까지 금속노조에 남았던 숨진 양씨는 결국 지난 2011년 4월 해고당했지만 법원은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다. 이지테크는 양씨를 재차 해고하고 근로관계 부존재 확인소송까지 제기했으나 이 역시 양씨가 승소했다. 결국 양씨는 무려 4년여 만인 지난해 5월 이지테크로 복직했다.

하지만 그곳엔 더욱 고통스런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 출신인 양씨는 복직 이후 ‘사무실 유령’ 신세가 됐다. 그에겐 어떠한 업무도 주어지지 않았고,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인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그의 자리는 칸막이로 가려져있었고, CCTV로 감시까지 이뤄졌다. 사실상 회사가 아닌 감옥으로 출근한 셈이다.

몇 년간 힘든 투쟁과 재판을 이어온 양씨였지만, 복직 이후 그는 더욱 힘들어했다. 이지테크는 양씨가 심각한 우울증 등을 호소하며 정신병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령 대접’을 바꾸지 않았다.

양동운 지회장은 “숨진 양씨는 두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한 뒤 상태가 조금 좋아졌었는데, 최근 사측으로부터 또다시 정직 징계를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진 것 같다”며 “복직 후 1년도 되지 않아 목숨을 끊고 말았다”고 말했다.

▲ 포스코 사내하청지회가 지난해 출근 선전전에 내건 현수막들.
◇ 계란으로 바위 치는 포스코 사내하청 노조

이처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안전’을 외치며 달린 이튿날,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떤 사고가 아닌,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장 큰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극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양씨와 함께 활동한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소속 조합원은 약 50여명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엔 약 1만명의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가 근무 중이다. 0.005%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극소수의 포스코 사내하청지회는 지난 2011년 포스코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2년 반 가까이 미뤄지고 있다. 포스코가 질긴 ‘시간끌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포스코 주식을 보유한 이들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하려 했지만, 포스코가 동원한 용역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포스코 사내하청 노조의 비참한 현실은 현대중공업과 비교된다. 최근 현대중공업에서는 ‘하청노조 집단 가입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여기엔 원청 현대중공업 노조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는 원청조차 제대로 된 노조가 없는 상황이다.

양동운 지회장은 “권오준 회장이 말하는 ‘안전’이 도대체 무엇인가. 포스코는 지독한 사내하청 노조 탄압으로 사람까지 죽이고 말았다”고 호소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