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전 시사저널 정치팀 팀장,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실 국장, 전 청와대 정책비서실 국장
[시사위크] 반기문 대망론에 느낌표(!)와 의문표(?)를 동시에 붙인 이유는, 긍정적인 느낌과 부정적인 의문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먼저 긍정적인 느낌(!)의 이유를 들어보자. 최고의 국제기구인 유엔(UN)의 한국인 사무총장이 5월 고국을 방문했다. 반 총장의 최대 장점은 역시 글로벌 리더십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국내에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반 총장은 해외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국경을 넘나들며 맹활약하니, 국민들의 머릿속에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반기문의 반씨는 이제 유엔 반씨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까.

반기문 대망론의 기반이 특이한 점은, 초·중·고교생과 대학생 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는 청소년들의 로망이다. 초·중·고교생들에게 투표권이 없다고? 이들에게는 SNS라는 ‘무서운 신무기’가 있고, 학부모들이 있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2017년 12월 대선 때 유권자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표계산이 아니라 미래의 꿈나무들, 기성정치에 식상한 사람들이 의외로 강하게 반기문 대망론을 외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성완종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기문이라는 이름 석 자가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성완종 전 회장은 자기가 반기문 총장을 대권 주자로 밀자, 대권을 꿈꾸던 이완구 전 총리가 성 전 회장 자신에게 정치적 보복을 가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반 총장의 이미지에 손상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반총장은 지난 19일 국내 기자들 앞에서 “앞으로 대권 주자 여론조사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여론조사는 계속되고, 반기문 대망론도 계속될 것이다. 제3의 길을 찾는 민심도 그렇고, 리더십의 순환이론을 보더라도 2017년 대선에서 글로벌 리더십과 국제무대능력을 지닌 사람이 유리하다고 본다.

이번에는 물음표이다. 그렇다면, 3년 후 대한민국 대통령은 혹시 반기문? 화려한 국제경험과 도덕성, 소통능력, 품성, 거기다 지역성까지…….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꼭 갖추어야 할 ‘3가지 묘한 조건’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내공’(內工)이다.

내공의 사전적 의미는 ‘훈련과 경험을 통해 안으로 쌓인 실력과 기운’이지만, 정치적 의미는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체득한 강력한 권력의지’라고 할까? 과거 이홍구 대망론, 이수성 대망론, 이회창 대망론, 고건 대망론, 정운찬 대망론 등 숱한 대망론이 나왔지만 도중에 허망하게 와해된 원인도 이들 모두가 산전수전을 제대로(?) 겪지 않은 총리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이들은 나름대로 내공을 쌓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불사신(不死身)’들과는 내공의 깊이가 다르다. 최악의 마키아벨리즘이 판치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귀공자 스타일’의 대선후보가 등극하기란 쉽지 않다. 반 총장이 성완종 사건 정도에 휘청거린다면, 애당초 대권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대선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고약한 상황들이 쏟아질 테니까.

내공은 단기간에 쌓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 총장의 대망론도 결국 중도에서 허망하게 사라지지 않을까? 몇 가지 방법은 있다. 그 중에 하나만 언급하자면, 내공이 강한 사람과 연대하는 방법이다. 부드러운 국제 외교리더십과 강한 국내 정치리더십이 투톱을 이룬다면, 상호 보완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DJP 연합이라고 할까?

어차피 다음 대선도 연합 전선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라는 고난도의 각론이 남아있지만. 반 총장 지지자 중에는 ‘발트하임 모델’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1970~80년대 외교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을 거쳐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에 오른 발트하임처럼 반 총장도 비슷한 길을 밟아 대권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적 낙관론이다.

그러나 발트하임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전쟁과 나치 전력시비, 유엔사무총장 후 4년여 공백 등 숱한 우여곡절을 넘겼다. 정치는 낙관론이나 당위성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에 의해 판가름 난다는 교훈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가끔 반 총장과 연락한다는 한 중진 정치인은 “반 총장은 대권에 관심이 있는 느낌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꽃가마를 태워주기를 바라는 것 같더라”고 필자에게 말했다. 꽃가마? 해방 이후 지금까지 꽃가마를 타고 대통령이 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런데 만약 반 총장이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는 획기적인 역할을 해낸다면? 온 국민이 환호하고, 세계가 환호하는 일을 해낸다면, 아마 여기저기서 꽃가마가 몰려오지 않겠는가? 모처럼 고국을 방문한 반 총장을 보면서 국민들은 국내 정치지도자들-김무성, 김문수, 문재인, 손학규, 안철수, 박원순 등-과 비교해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아직 대선이 2년 반이나 남아있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느낌표 반(半), 물음표 반(半)의 중간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가장 무방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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