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국내 재벌가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제, 바로 승계 문제다. 후계자의 능력과 승계 이후의 성장 동력,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등 막대한 비용, 그리고 세간의 차가운 시선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삼성을 이끌 세 번째 인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이재용 체제’를 준비 중인 삼성은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과제를 처리하느라 소리 없이 분주하다.

이러한 산을 넘어 승계를 완료한다 해도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이른바 ‘형제의 난’이 벌어질 가능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후계자가 ‘독자’라면 모를까, 형제자매로 이뤄진 후계구도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피보다 진한 것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선 분명 그보다 진하고 달콤한 것이 있다.

삼성 역시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가 각자의 사업영역을 구축하며 후계구도를 다지고 있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 피보다 진한 돈… ‘형제의 난’ 잔혹사

우리 재벌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형제의 난’은 2000년대 초반 현대가(家)에서 벌어졌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경영권을 놓고 형제들이 갈등을 벌인 것이다. 공동회장을 맡았던 둘째 아들 정몽구 현 현대차그룹 회장과 다섯째 고(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충돌했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현대가 ‘형제의 난’은 결국 그룹을 뿔뿔이 흩어놓았고, 지난 2003년 고 정몽헌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다.

형제들의 공동경영 전통을 지닌 두산가(家) 역시 비극적인 ‘형제의 난’을 피하지 못했다. 경영권 분쟁을 겪는 과정에서 형제 간 폭로전이 벌어졌고,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회장이 법원에 서야했다. 형제들과 외로운 싸움을 벌이다 가문에서 퇴출당한 박용오 전 회장은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제의 난’이 현재진행형인 곳도 있다. 금호가(家)와 효성가(家)가 그 주인공이다. 금호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형제는 지난 2009년 계열분리 이후 갈등을 겪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효성그룹은 후계구도에서 밀린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 조현준 사장을 수백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삼성 역시 얼마 전 ‘형제의 난’으로 곤욕을 치렀다. 삼성은 고(故) 이병철 창업주에서 2세로 승계하며 삼성-신세계-CJ 등으로 나뉜 바 있지만, 현대나 두산 같은 큰 갈등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뒤늦은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고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상속 관련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2년 동안 이어진 갈등은 지난해 이맹희 전 회장 측의 소송 취하로 막을 내렸지만, 이 과정에서 삼성가(家)는 망신을 피할 수 없었다.

국내 최고의 재벌가에서 벌어진 70~80대 노형제의 갈등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특히 평소 침착하고 냉철하기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회장이 서로를 향해 거친 언사를 쏟아냈으며, 삼성과 CJ 사이에 ‘미행’ 논란이 불거지는 등 ‘막장’ 집안싸움이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삼성가 ‘형제의 난’ 역시 비극으로 이어졌다. 갈등이 막을 내린 시점을 전후로 이맹희 전 회장은 암이 재발했고, 이건희 회장은 쓰러지고 만 것이다.

 

▲ 2015년 3월말 기준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 현황.

◇ 이재용에 쏠린 지분… 갈등의 씨앗 될 수도

 

이처럼 재벌가의 승계는 크고 작은 ‘형제의 난’을 야기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세대가 내려갈수록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그만큼 나눠야할 파이와 변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 사이에 이런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오래전부터 삼남매에게 각자의 사업 분야를 맡겨온 덕분에 교통정리가 확실한 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IT, 전자, 금융을 맡아 삼성그룹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며,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를 중심으로 서비스부문을, 이서현 사장은 제일모직을 중심으로 패션부문을 맡는다.

‘형제의 난’을 불러오기 쉬운 애매모호한 공동경영이나 계열분리는 삼성의 승계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삼남매가 경영 일선에 함께하는 한 ‘형제의 난’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에게 쏠린 지분이 자칫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엔 제일모직이 있다. 이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으로 23.23%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이부진, 이서현 자매는 각각 7.74%씩 나눠 갖고 있다.

제일모직은 다시 이건희 회장과 함께 삼성생명 지분의 상당수를 보유 중이다. 이건희 회장이 20.76%, 제일모직이 19.34%다. 이어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와 전자·중공업 분야의 정점에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부진 사장의 호텔신라 지분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SDI 등이 보유 중인데, 이는 곧 삼성생명의 보유로 볼 수 있다. 나머지 계열사의 정점에 삼성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은 0.06%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일모직이 보유한 지분 19.34%와 최근 자신이 이사장을 맡게 된 삼성생명공익재단 및 삼성문화재단이 보유 중인 6.86%를 합하면 26.26%에 달한다.

즉,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뼈대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볼 수 있는데, 이재용 부회장은 이 부분에서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 중인 삼성생명 지분 20.76%이 변수로 남아있긴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후계구도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적인 후계구도는 자칫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일선 경영은 교통정리가 이뤄졌지만, 경영권의 핵심인 지분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쏠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두 동생과 다른 구상을 그리거나,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 사이에 균열이 발생할 경우, 혹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경영공백이 발생할 경우 갈등은 순식간에 점화될 전망이다.

3세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는 삼성이 ‘형제의 난’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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