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로비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억울한 듯 “과거의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시사위크|경남 김해=소미연 기자] 땅거미 진 김해 봉하마을. 어둠을 뚫고 트럭 한 대가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진돗개 한 마리가 주인을 반기듯 컹컹 짓기 시작했다. 이윽고 트럭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흙범벅이가 된 티셔츠와 청바지, 끈 풀린 운동화가 마치 잡부와 다름없었다. 공사 자재를 옮기던 그들은 인기척에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아무렇게나 눌러쓴 모자 아래의 주인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였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노건평 씨가 물었다. “누꼬?” 지난 19일, 봉하마을에서 노건평 씨와 예상 밖의 만남이 이뤄졌다.

◇ ‘성완종 특사 개입설’에 버럭… 집 보수공사와 농사짓기에 열중

노건평 씨는 기자의 명함을 확인한 후 단박에 “(기자가) 무슨 얘기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대답해드릴 게 없다”면서 취재를 거부했다.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로비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선 억울한 듯 “과거의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다른 말은 없었다. 다만 노건평 씨는 “전화가 무수하게 왔다”면서 그간 성완종 파문으로 시달려왔음을 알렸다.

앞서 노건평 씨는 성완종 전 회장의 특사 의혹의 핵심 인물로 거론돼왔다. 2008년 1월1일자 참여정부 마지막 특별사면 과정에서 1차 명단에 이름이 빠졌다가 막판에 성완종 전 회장이 홀로 추가된 배경에 노건평 씨가 개입됐다는 것. 이와 관련, MB정부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노건평 씨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사이에 비공식 ‘형님 라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통령 형님들은 실세로 통했다. 이상득 전 의원과 노건평 씨가 각각 고향 이름을 따서 ‘영일대군’, ‘봉하대군’으로 통했던 이유다.

한때 ‘봉하대군’으로 불렸던 노건평 씨는 201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한 뒤 농사꾼으로 돌아갔다. 이를 증명하듯 장갑을 벗은 그의 손은 땀과 물로 퉁퉁 불어터져 있었다. 현재 노건평 씨는 블랙베리 농사는 물론 자신의 집 보수공사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하고 있다.

▲ 노건평 씨의 봉하마을 자택과 블랙베리 밭. 당초 그는 동생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관리와 추모 사업에 도움을 주고 싶어 했지만 무산됐다. 현재 자신의 집 보수공사와 농사에 열중하고 있다. / 사진|경남 김해=소미연 기자
특히 올해는 집 공사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부인 민미영 씨는 2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남편이) 블랙베리 농사를 안 한다고 해서 올해 전지작업을 안했더니 가지가 자기 마음대로 자랐다. 그래서 올해 블랙베리 수확은 힘들 것 같다”면서 “(남편이) 집 짓는다고 자기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켜도 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털어놨다.

당초 계획했던 봉하재단 측면 지원은 무산됐다. 동생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관리와 추모사업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전문적인 일이라 농사꾼인 내가 도와드릴 일이 없다”는 게 노건평 씨의 설명이다. 봉하재단 관계자도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권양숙 여사와 노건평 씨가 한 마을에서 지내다보니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노건평 씨가) 재단 사업에 어떤 형식으로든 관여하는 바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 의도와 다른 보도에 언론 기피 “기자들에게 당했다”

한편, 노건평 씨는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매각과정에 개입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고 2008년 12월 수감됐다. 이후 201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으나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전기안전 관련기기 생산업체 KEP사의 횡령 혐의로 기소, 유죄로 인정돼 또다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노건평 씨는 언론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2013년 2월부터 노건평 씨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전무한 상태다. 그가 언론 접촉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노건평 씨는 이날 기자에게 “항시 (기자들에게) 시달려왔다. 부담스럽다. 말하면 (기사에) 적용이 안 되고 작품을 만들더라”고 토로하며 “냉정하다 할 수 있겠지만, 기자들에게 너무 시달리고 당했기 때문에 아예 상대를 안 하는 게 내 인생에 좋더라. 미안하다. 이해하고 돌아가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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