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31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하지만 승객 안전과 관련된 사건사고도 급증하고 있어 안팎의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이스타항공)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지난해 1월. 인천공항을 출발해 청주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의 조정석 계기판에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여객기 후방 도어가 열렸다는 알림 램프였다. 이 경고등은 2번이나 반복됐다. 하지만 기장은 승무원에게 “문 손잡이를 붙잡으라”고 지시한 채 운항을 강행했다.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지만 기장은 이를 탑재용 항공일지에 기록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고 아찔한 이 사건은 국내 저비용항공사인 ‘이스타항공’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 문열림 경고등 무시, 도어핸들에 테이프 붙이고 운항까지…

충격적인 사건의 전모는 최근 이스타항공 기장 A씨와 관련된 재판에서 드러났다. 국토부는 당시 사건을 문제삼아 지난해 7월 이스타항공 기장 A씨에 대해 ‘자격증명 효력정지’ 처분을 내렸고, 이에 A씨는 국토부를 상대로 취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만해도 해도 A씨는 “승무원에게 문 손잡이를 붙잡으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고등이 들어오긴 했지만 저절로 꺼졌고 승무원에게 후방 도어를 확인하라고 지시했을 뿐, 후방 도어 손잡이를 잡게 한 상태로 운항한 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전혀 달랐다.

28일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에 따르면 A씨는 운항 다음날 이스타항공 안전보안실에 “항공기 이륙 후 경고등이 들어온 후 2∼3초 후 바로 꺼짐. 승무원들에게 방송해 L2 도어로 가서 잠김 상태를 확인하라고 함. 잠시 후 승무원에게서 도어 핸들을 다시 잘 잠갔다고 보고 받음. 약 1분 후 다시 경고등이 들어온 뒤 2∼3초 후에 바로 꺼짐. 청주까지 얼마 멀지 않았으니 착륙할 때까지 도어 핸들을 잡고 가도록 지시함”이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특히 항공기가 청주에서 제주로 다시 회항할 때는 도어 핸들에 ‘테이프 작업’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객기는 김포로 운항된 이후에서야 이스타항공 정비팀이 정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 28일 법원은 이스타항공 기장이 국토부의 '자격증명 효력정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기각 처분했다. 국토부의 처분이 적법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이스타항공 기장 A씨에 대한 국토부 처분이 적법하다며 국토부를 상대로 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항공기의 기계적 결함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아 정비가 적시에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대규모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던 점과 항공기 사고는 그 자체로 대형 참사로 이어지므로 항공기 조종사는 그 직무상 의무를 충실히 준수해야 할 필요성이 큰 점 등을 종합할 때 처분은 적법하다”고 밝혔다.

◇ 실적은 급상승, 안전·신뢰는 급추락  

해당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이스타항공의 안전불감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가뜩이나 불미스런 사고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장마저도 심각한 ‘모럴해저드’를 보인 이번 사건은 이스타항공의 ‘승객 안전’에 대한 인식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연말 여객기 안전문제를 제보한 기장을 해고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실제 국내 항공사 중 지난해 국제선 지연·결항률이 가장 높았던 업체는 이스타항공으로 나타났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스타항공은 총 2,653편 중 20편(0.75%)이 지연 운행해 국적사 가운데 지연·결항률이 가장 높았다. 지연·결항률은 기체 정비 문제로 출발이 예정보다 1시간 넘게 늦어지거나 결항한 항공편 비중을 집계한 것이다. 제주항공(0.37%), 아시아나항공(0.36%), 티웨이항공(0.33%), 에어부산(0.32%), 진에어(0.27%), 대한항공(0.14%)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국내선과 국제선을 통틀어 결항률이 가장 놓은 항공사에서도 이스타항공은 2위(0.88%)를 기록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의 평균 결항률은 0.78%였다. 앞서 2013년에는 6월부터 7월까지 한 달 동안 무려 18차례나 출발이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기체 고장 잦은 사고로 승객 불편을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가격만큼 안전도도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더불어 이스타항공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 이스타항공 기장이 '도어열림' 경고를 무시한 채, 비행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해당 기장은 승무원에게 "도어핸들을 잡고 있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이스타항공)

최근 이스타항공의 이용객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전’에 대한 우려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22일 국토부가 발표한 ‘4월 항공실적’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의 국제선 탑승률은 국적사 평균 80.2%보다 10%p 이상을 웃돌았으며 국내 대형국적사와 저비용항공사 등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국내선 탑승객 역시 18만547명으로 전년동월대비 15.8% 증가했다. 이에 따라 실적도 급상승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31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많은 승객’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으로,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항공기 운항의 기본인 ‘안전’을 소홀히 할 경우 이스타항공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 것이고, 승객들의 외면은 결국 이스타항공의 존폐와도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타항공 측은 재판부의 이번 판결에 대해 “기장 개인의 일탈일 뿐, 회사 측 공식입장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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