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개설시 '금융거래목적' 확인 이유로 공과금 이체나 예적금 가입 강요 사례 포착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최근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근절’에 적극 나서면서 은행들의 신규 통장 발급 절차가 대폭 강화됐다. 그런데 우리은행이 이를 빌미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영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통장 개설을 요구할 경우, 일부 고객에게 공과금의 자동이체나 적금을 가입해야 통장 발급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 강화된 통장개설 절차 이용해 꼼수 영업?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박 모 씨는 지난 4일 우리은행 S지점에서 통장 개설을 신청했다가 당황스런 일을 겪었다. 지점 창구 직원이 내부 지침을 제시하면서 “통장을 만들려면 휴대폰 요금 전기세 등 공과금 자동이체나 적금을 가입해야 만이 통장 발급이 가능하다”고 안내를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어떤 근거로 이런 조건이 필요하냐고 따지자 책임자가 나와 박씨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이 관계자는 “금감원 지시사항이며 본사 지침이므로 제시된 내용대로 이행해야만 통장발급이 가능하다”고 통장발급을 거부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근절’에 나서면서 은행의 통장발급 절차는 대폭 강화됐다. 이전까지는 신분증만 제시하면 통장이 쉽게 발급됐으나, 이제는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와 객관적 증빙 자료 등도 깐깐히 요구하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각 금융거래 용도에 맞게 다양한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급여통장을 개설할 시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등을, 사업자 통장 개설 때는 물품공급계약서, 전자세금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입출금인 경우에는 공과금, 관리비 이체, 모임용인 경우 구성원 명부와 회칙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연맹은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공과금 이체와 적금 가입을 유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대포통장’ 근절을 이유로 금융상품 가입이나 공과금 관리비 이체까지 요구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며 “소비자들로선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안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증빙자료를 징구해 발급한 통장도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금융상품을 가입하지 않으면 통장발급을 거절하는 것은 상품가입을 강요하는 꺾기행위로도 볼 수 있기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형구 국장은 “최근 은행들의 ‘대포통장 근절’ 정책에 따라 신규 통장 발급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민원이 커지고 있다”며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지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 무조건 각종 증명서류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고 축적된 정보 및 내부통제시스템과 전산시스템을 활용해 ‘대포통장’ 근절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 우리은행 “거래목적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거래목적을 확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방침에 따라 통장 개설시 금융거래 목적확인서를 받게 됐다. 그러면서 급여통장, 사업자통장, 입출금통장 등 각 용처에 맞게 증빙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100% 강제 조항이 아니지만, 우리은행과 전혀 거래가 없었던 고객이거나 거래 목적이 명확히 확인이 안 될 경우에는 받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이 고객의 사례도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들이 까다로워진 절차로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영업적으로 악용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대포 통장 거래를 뿌리 뽑기 위해 관련자 고발은 물론 은행거래 제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13일부터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1년 이상 쓰지 않은 계좌에 대해서는 거래를 중지하도록 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시중은행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금융당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