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지난해 37년 만에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SK이노베이션이 재무구조개선작업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고 있다. 자회사 SK루브리컨츠를 활용한 자산 확보방안이 오락가락하면서 구조조정 작업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구조조정을 작업을 진두지휘해 온 정철길 사장마저 ‘방위산업비리’와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는 상황까지 맞으면서 재무구조개선 작업이 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우려가 일고 있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지난 12일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구속)의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납품 비리와 관련해 SK C&C 전 대표인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규태 회장은 EWTS 납품 계약을 중개하면서 방위사업청 측을 속이고 사업비 500억원을 부풀려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이날 검찰은 정 사장을 소환해 SK C&C가 EWTS 사업의 협력업체로 선정되는 대가로 부정하게 사업비를 부풀리는 과정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캐물었다.

정 사장은 방위사업청과 터키 방산업체 하벨산, SK C&C가 ‘EWTS 공급계약’을 한 2009년부터 SK C&C에서 공공금융사업부문장(사장), IT서비스사업총괄 사장을 맡았다. 2011년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가 올해 1월 SK이노베이션 사장으로 옮겼다.

◇‘구조조정 지휘관’ 정철길 대표, ‘방산비리’ 관련 검찰 참고인 조사

합수단에 따르면 SK C&C는 2009년 4월 방위사업청이 하벨산사와 9,600만달러(한화 약 1,000억원) 조건으로 EWTS 도입 계약을 맺을 당시 하벨산사의 국내 협력업체로 선정됐다. SK C&C는 하벨산사의 500억원 규모의 핵심기술 개발 사업을 하청 받고 이 사업의 40% 가량을 이 회장 아들이 운영하는 일광의 계열사 ㈜솔브레인과 일진하이테크에 재하청을 줬다. 솔브레인 등은 해외에서 저가의 제품을 사다가 자신들이 개발한 것처럼 속이고 가격을 부풀려 SK C&C에 납품한 것으로 파악됐다.

합수단은 SK C&C의 최고위층이었던 정 사장이 이런 과정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의심하고 있다. 앞서 합수단은 일광공영 이 회장과 공모한 혐의 등으로 SK C&C의 EWTS 담당 전무 윤모 씨와 공군 준장 출신 권모(60) 전 상무를 구속한 바 있다. 정 사장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향후 그의 연루 여부가 파악된다면 그 또한 검찰의 칼날의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정 사장의 검찰 조사로 SK이노베이션은 어려운 상황에 부담거리를 하나 더 얹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국제유가 급락 등으로 37년 만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특히 이 기간 순차입금이 2조 원가량 늘면서 재무구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SK그룹은 지난 1월 ‘구조조정 전문가’인 정 사장을  ‘소방수’로 긴급 투입했다. 정 사장은 곧바로 자산 매각과 희망퇴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던 자산 확보 작업은 난항을 빚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재무구조개선 차원에서 자회사인 윤활유업체 SK루브리컨츠의 기업공개(IPO)를 준비해오다 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해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와 매각 협상을 진행해왔다.

◇SK루브리컨츠 매각 협상 돌연 중단

약 2조 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던 SK루브리컨츠의 매각 협상은 최근 돌연 중단됐다. 업계에선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매각 가격을 놓고 이견 차가 컸다는 해석이 있는 반면, 내부적인 반대에 부딪쳤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그룹 임원들은 매년 3,0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내는 알짜 회사를 매각하는 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SK루브리컨츠는 윤활유의 원료인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회사로 지난해 하반기 유가 급락에도 전년보다 89.84% 증가한 2,95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업계에선 SK루브리컨츠의 매각이 무산됨에 따라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재매각 추진 가능성도 적진 않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재무개선작업이 차질을 빚는 모습을 보이면서 SK이노베이션은 신용등급에 낀 먹구름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16일 한국신용평가는 SK이노베이션의 무보증회사채 신용등급을 ‘AA+’,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각각 유지했다. 재무구조개선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경우, 신용등급하향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황을 맞이한 정 사장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SK이노베이션 측은 대표이사의 검찰조사와 자회사 매각 협상 중단에 대해 말을 아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우선 대표이사의 검찰 조사에 대해서 드릴 말이 없다. 참고인 조사만 받은 정도로 알고 있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SK루브리컨츠의 IPO 및 추가 매각협상 등에 대해 “확정된 사안은 없지만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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