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공식화 했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가 정략에만 매몰돼 있다고 지적, 거부권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여당 원내대표’를 직접 언급하면서 ‘배신의 정치’에 대해 국민이 심판해야한다고 힘줘 말했다.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다소 격앙돼 있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역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됐지만 위헌성 논란이 계속돼 왔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과정도 없이 하룻밤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됐다”면서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다시 시도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며 국회의 ‘저의’를 의심했다.

◇ 박근혜 대통령 “정치권, 정부 책임 묻기 전에 구태정치부터 청산하라”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국회와 정치권이 민생 법안의 사활을 건 추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묶인 것들부터 서둘러 해결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고 여야 정치권을 모두 비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공식 입장이 전해지자 새정치민주연합은 강하게 반발했다. 긴급의총을 소집한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재의결까지 메르스 관련법을 제외하고 모든 의사일정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문재인 대표도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 남았다”며 “대통령께서 (중재안마저) 거부한다는 것은 야당과 국회와 국민들과 싸우자는 것”이라며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상태다.

새정치연합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청와대와 국회의 대립으로 보고 새누리당도 반드시 재의결을 통해 가결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은혜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의회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김무성 대표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해 의회주의를 지키는 데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당의 입장을 밝혔다.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는 모두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이에 25일 예정됐던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 새정치연합 강력반발, 새누리당 격랑

새정치연합이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반면 새누리당은 격랑에 휩싸인 모양새다. 당초 국회법 개정안으로 당청갈등이 심화되자 친박 온건파와 비박 김무성 대표 등은 국회법 개정안을 ‘자동폐기’하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재신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터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어설픈 봉합’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다”며 ‘배신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당부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목이 원조친박 출신이면서도 최근까지 청와대와 사사건건 대립했던 유 원내대표에 지목해 강하게 ‘비토’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직후 일부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유 원내대표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는 상황이다. 김태흠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유 원내대표는 무능한 협상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해야한다”고 주장했고, 김현숙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법 개정안이) 아무 문제없이 통과될 내용의 법안이라고 의원총회에 보고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책임론에 불을 붙였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 여부를 최종결정할 예정이다. 의총 결과에 따라 자신의 거취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 새누리당 긴급 의총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좌), 원유철 정책위의장(중),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우) 등 지도부. <사진=뉴시스>
◇ 유승민 원내대표, 리더십 타격 ‘불가피’

현재까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결을 시도해 ‘가결’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경우 박 대통령의 급속한 레임덕이 진행됨과 동시에 친박과 비박 모두 공멸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 새누리당 다수의 의원들은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본회의 재의결에서 ‘부결’하자는 의견과 본회의 불참으로 법안을 ‘자동폐기’하자는 두 가지 방안이 상정돼 논의 중이다. 선택에 따라 그 파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본회의 표결을 통해 부결하는 방식은 유 원내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 성격으로 비춰질 수 있는 만큼, 강한 사퇴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자동폐기’ 방안도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협상을 담당했던 유 원내대표의 리더십 타격이 불가피하고, 새정치연합이 향후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면 정국이 급속도로 냉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국회법 거부권 논란에 대해 “청와대와 여야, 행정부와 국회, 친박과 비박, 여당과 야당의 개별적 대립점이 총체적으로 묶여있는 상황”이라며 “구도가 복잡하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개정안이 폐기된 이후에도 여진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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