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이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에 휩싸였다. 사진 왼쪽 위는 신격호 명예회장, 오른쪽은 신동주 전 부회장, 아래는 신동빈 회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무난하게 마무리되는 듯 했던 롯데그룹의 후계구도가 결국 추잡한 장면을 연출하며 혼돈에 빠졌다. 경영에 더 많은 열정과 능력을 가진 차남이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으로 정리되는 듯 했지만, 그 속은 갈등과 반목으로 곪아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피를 나눈 형제간의 싸움이 이제 막 시작했다는 점이다.

◇ 장남의 기습과 차남의 역습

지난 28일 롯데가(家)로부터 전해진 소식은 충격 그 자체다. 우선 격동의 현대사 속 경제계 ‘산증인’이자, 롯데의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됐다.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지만, 이는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이러한 조치를 내린 것은 다름 아닌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이후 드러난 내막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촌극’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까지 정리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27일 신격호 회장을 일본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신격호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를 찾아 자신을 제외한 이사 6명을 해임한다고 밝혔다. 여기엔 신동빈 회장도 포함돼있었다.

형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습격을 당한 신동빈 회장은 이튿날 묵직한 반격에 나섰다. 전날 신격호 회장이 내린 조치는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며 무효화했다. 이어 다른 이사들과 함께 아버지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난데없는 난리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올해 초 신격호 명예회장은 신동주 전 부회장을 내친 바 있다. 일본은 신동주 전 부회장, 한국은 신동빈 회장에게 맡겨왔던 신격호 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최종 후계자로 낙점한 것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 역시 갑작스런 일이었으며, 해임 이유도 뚜렷하지 않았다. 자연히 세간의 관심과 궁금증은 증폭됐고, 형제간의 경쟁에서 신동빈 회장이 완승을 거뒀다는 데에 무게가 실렸다. 그런데 당시엔 잠잠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6개월이 흐른 지금 ‘기습’을 시도했고, 신동빈 회장은 이에 맞서 ‘역습’을 한 것이다.

▲ '형제의 난' 소식에 29일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주가가 동반 급등했다. <사진=뉴시스>
◇ 형제다툼 바라보는 세간의 불편한 시선

롯데그룹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우선 ‘돈’에 눈이 멀어 가족조차 보이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신동주 전 회장은 동생의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94세의 고령인 아버지를 일본으로 데려갔다. 이튿날 귀국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틀 새 2번이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에 신동빈 회장 측은 “가족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분노한 신동빈 회장 역시 형의 ‘쿠데타’를 제압하고,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창업주인 아버지를 현역에서 ‘강제 은퇴’시켰다. 1922년생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지금의 롯데그룹을 만든 인물이며, 국내 1세대 기업인 중 유일하게 현역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아들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그리 명예롭지 않게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게 됐다.

또한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행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롯데그룹은 한국과 일본에 수십 개의 계열사와 수만 명의 직원, 수많은 협력업체를 두고 있다. 롯데그룹 수장자리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어린 형제들이 장난감을 놓고 다투듯이 결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은 이미 적잖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의 주가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결코 바람직한 과정이라 볼 수 없다.

◇ 후계구도 안개 속으로… 신영자 이사장 행보 ‘주목’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이미 지난 1월 신동빈 회장에게 밀려났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이번에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임원자리에서 밀려났을 뿐, 주주로서의 입지엔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지만, 핵심 계열사의 지분은 두 형제가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따라서 끝난 줄 알았던 롯데그룹 후계구도는 다시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동주-신동빈 형제 중 누구도 확실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여전히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가족들 사이의 ‘편가르기’가 벌어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당장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부터 관심이 집중된다. 신영자 이사장은 과거 롯데그룹의 경영에도 적극 참여했던 인물이며, 상당한 지분도 보유 중이다. 유력한 캐스팅보트인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가족사와 관계다. 신영자 이사장은 신동주-신동빈 형제와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남매다. 신격호 회장은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신영자 이사장을,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신동주-신동빈 형제를, 그리고 세 번째 부인 사이에서 막내딸 신유미 씨를 낳았다. 같은 어머니를 둔 신동주-신동빈 형제가 정작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영자-신동주-신동빈 남매의 관계도 복잡하다. 신영자 이사장은 지난 1월 밀려난 신동주 전 부회장의 편을 많이 들어준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지난 27일 신동주 부회장이 아버지를 일본으로 데려갈 당시 동행했으며, 귀국할 때도 홀로 아버지를 모셨다. 신동빈 회장 보단 신동주 전 부회장에 가까운 모습이다. 지난 2012년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장악하자 신영자 이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신영자 이사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가장 아끼고 신망하는 자녀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단순히 본인 지분 뿐 아니라 신격호 명예회장의 지분의 향방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사에 한 페이지를 기록할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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