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제갈공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싱크탱크들의 전략싸움이 볼만해질 전망이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정치권에 전운이 감지되고 있다. 의원정수 확대부터 권역별 비례대표 논의까지 어떤 제도가 자당에 유리할 지 주판알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에는 전국적인 바람을 일으킬만한 '인물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도와 정책 등 콘텐츠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 대목에서 당의 제갈공명이라 할 수 있는 싱크탱크,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과 새정치연합 민주정책연구원의 대결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역사가 깊어지면, 정당별 정책이나 방향성이 인물론 보다 중요해진다. 우리 정치사 역시 김영삼·김대중 등 신화적 인물중심의 정치에서 정당중심의 정치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 있다. 특히 국회의 입법 기능이 점차 확대되면서 당의 정책개발을 맡고 있는 싱크탱크의 중요성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현재 여야는 당의 싱크탱크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내년 총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 당 기조에 지대한 영향 미치는 여야 싱크탱크

이 같은 사실은 지난 30일 유출된 여의도연구원의 대외비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여의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강경진보의 국회진출 교두보이고, 그대로 시행될 경우 여소야대 정국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반대논리를 확산시키고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재미있는 것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반응이다. 방미 중인 김무성 대표는 지난 28일(현지시간) 워싱턴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 "진보좌파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이다. 이를 막는 방법은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31일에는 서청원 최고위원이 "의원정수 확대는 절대불가능하다"며 당론으로 정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여의도연구원의 보고서가 당 지도부의 방향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김무성 대표가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식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도 여의도연구원의 분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원은 앞서 차기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중도층 장악 프로젝트'를 가동해야한다고 보고서를 통해 제언한 바 있다. <관련기사 : 김무성의 말없는 행보에서 읽히는 세 가지 대권코드>

새정치연합의 민주정책연구원도 내년 총선을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 '국민지갑 지키기'가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최저임금인상과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이론을 받아들여 만들어낸 결과다. 단순하게 '분배의 정의'에서 나아가 중도층을 사로잡기 위한 '분배를 통한 성장'을 강조한 것이 이채롭다. 아울러 혁신위와 함께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비슷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논리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 새정치연합의 정책엑스포와 새누리당의 정책 어플리케이션 홍보영상은 각 싱크탱크들의 성격차이를 자명하게 보여준다. 민주정책연구원이 다소 딱딱하고 무거운 반면 여의도연구소는 다소 가볍지만 화제성이 돋보인다.
◇ 성격차 극명한 여야 싱크탱크, 콘텐츠 싸움이 내년 총선 좌우

정권창출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달리고 있지만, 두 전략그룹은 성격적인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세계적인 흐름과 이론을 분석해 국내현실에 맞춘 정책을 만드는데 치중하는 분위기다. 반면 여의도연구원은 정책연구에서 나아가 홍보와 '화제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전략그룹에서 준비한 김무성의 '로봇연기'와 새정치연합 정책엑스포 영상에서 이 같은 차이는 자명하다. 여론수렴을 위한 어플리케이션 홍보영상에 출연한 김무성 대표는 젊은 코드를 반영해 다소 가벼웠지만 재미있게 접근해 큰 화제를 모은 케이스다. 새정치연합은 문재인·박원순·안철수 등 차기대권 주자들이 총출동해 정책 엑스포의 홍보에 나섰다. 다만 목적과 내용은 훌륭했으나 홍보가 무겁고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성격차이는 여론조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싱크탱크는 정책과 공약을 개발하는 기구"라는 민병두 원장의 말처럼 민주정책연구원은 여론조사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정책의 타당성 검증이 우선이라는 것. 반면 여의도연구원은 오랜시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여론조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한 민심을 정책에 반영하는데 주력하는 셈이다.

실제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공신력에 정평이 나 있다. 야당의 선거캠프 관계자들 조차 "여원 여론조사 보여줄까요? 우리가 이기고 있어요"라고 인용하며 기자들에게 홍보할 정도다.

현재까지 전적에서는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의도연구원이 앞선 것으로 보인다. 20년의 역사와 연평균 120억여원의 예산을 자랑하는 여의도연구원은 2008년에 만들어져 짧은 역사를 가진 민주정책연구원과의 선거대결에서 대부분 승리했다. 최근 두 번의 재보선에서는 '공약대결'에서조차 야당이 참패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배를 마신 민주정책연구원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날을 갈고 있다. 홍보전략의 부재는 손혜원 홍보본부장의 영입으로 채우고, 전략통 민병두 원장을 중심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춘 참신한 공약을 만들어내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내년 총선과 이어지는 대선에서 펼쳐질 양당 싱크탱크의 전략싸움이 점점 볼만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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