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시사위크] 북한 고려항공이 기내식을 김밥으로 바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제공해오던 햄버거를 더 이상 서비스하지 않겠다는 게 최근 고려항공 측이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서구문화의 상징일 수 있는 햄버거는 북한에서 금기시된 음식은 아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고기겹빵’(햄버거의 북한식 표현)을 김일성대 학생들에게 공급해줄 것을 주문하면서 “감자튀기(프렌치프라이)를 함께 곁들여 제공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게 북한 매체들의 보도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버거 기내식을 중단한 건 ‘주체의 나라’로 외부세계에 알려진 북한 체제의 대외 이미지를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려항공 측의 이런 변화는 평양 순안비행장의 리모델링에 발맞춰 이뤄졌다. 북한은 지난 7월 1일 순안비행장 현대화 공사를 마무리하고 순안국제공항 제2청사 준공식을 열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가동을 앞두고 현장을 찾아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북한 선전매체들에 따르면 새 공항터미널은 기존의 6배 규모로 크게 지어졌다. 여기에는 면세점과 식당·커피숍 등이 들어섰다. 무엇보다 비행기 탑승 때 편의를 위해 브리지(탑승교)가 설치돼 과거 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해 활주로를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 비행기에 타야했던 불편함이 사라졌다.

신청사 준공행사에서 박봉주 총리는 “평양 국제비행장지구 개발 총계획안대로 비행장 주변의 면모를 수도의 관문답게 훌륭히 꾸리기 위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도 현장방문 때 “국제비행장으로부터 평양시 중심구역까지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새로 건설해 원활한 교통과 운수를 보장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유튜브 등을 통해 새로운 시설과 승무원들의 서비스 모습을 홍보하면서 변신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몇 차례의 평양 방문 과정에서 필자가 체험한 고려항공은 서비스 등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중국 베이징이나 선양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북한 고려항공 기내에 앉자마자 스튜어디스가 “선생님, 자리에선 걸상띠를 매야합네다”라고 말해 한동안 어리둥절했던 기억도 난다. ‘아니 걸상띠라니 무슨 뜻인가’하며 당황해하던 내 앞에  ‘걸상띠를 매시오’라고 새겨진 아크릴판 글자가 보였다. 걸상띠는 좌석 안전벨트를 가리키는 것이란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항공기는 북한 경제난의 현주소를 반영하는듯했다. 1960~70년대 옛 소련에서 도입한 노후기종인데다, 구명조끼 등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안전에도 문제가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용기로 알려진 민항기도 지나치게 낡아 해외운항이 금지된 것으로 우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방문 때 이 전용기를 운항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안전을 위협받는 항공기를 두고 공항청사는 최신식으로 지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한국과 국제사회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철저한 통제체제인 때문에 외교관이나 해외 상사원 등 이용객이 극소수인 현실에서 공항 리모델링 공사에 과도한 투자가 이뤄졌고, 김정은 또한 터무니없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형기종 위주로 불과 하루 몇 편 운항하는 현실에서 평양 시내와 순안공항을 고속철과 고속도로로 연결하라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변화의 몸짓으로 해석될 대목도 있다. 새 평양공항 청사에서 김일성 초상화가 사라진 게 대표적이다. 공항 활주로에 내리면 마치 ‘이 곳이 평양이다’라고 확인해주는 듯 하던 상징물이 사라진 것이다. 이를 두고 북한이 김일성 체제에 대한 해외의 거부감을 의식해 없앤 것이라거나 김정은이 더 이상 할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북한체제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미라는 해석 등이 나온다.

하지만 국제사회로 나가는 관문인 평양공항을 새 단장하고도 그에 걸맞는 후속 행보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집권 4년차인 김정은 체제가 아직 개혁이나 개방으로 나설 채비를 하지 못한듯하다는 얘기다. 오히려 빗장을 더 걸어 잠그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말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외치면서도 대남 군사도발 움직임을 그칠 줄 모르고, 우리 국가 원수와 체제에 대해 입에 담기 어려운 비방을 일삼고 있어 실망감을 주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일본 등 국제사회와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쿠바와 미국이 수교를 하고 이란이 핵 협상을 타결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아울러 집권 4년차에 접어든 김정은은 스키장과 워터파크 같은 특권층 위주 시설로 자신만의 리더십을 과시하려하고 있다. 이른바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나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행보를 하고 있다는 목소리다.

평양을 향한 국제사회의 시선은 따갑다. 평양 공항 레모델링이 김정은의 업적이란 선전보도가 북한 매체들에 떠들썩하게 실리던 시점에 고려항공의 서비스가 낙제라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세계 최대의 공항 및 항공사 서비스 평가기관인 영국의 스카이트랙스가 고려항공 탑승객을 대상으로 공항시설과 기내 서비스 관련 56개 부문에 걸쳐 설문조사한 결과를 내놓았는데, 전 세계 600여개 항공사 가운데 최저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또 유럽연합(EU)은 북한 고려항공의 EU 역내 운항 제한 조치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르면 세계 20개국 231개 항공사의 EU 역내 취항이 금지됐고, 북한 고려항공을 포함한 8개 항공사는 운항 제한 항공사로 지목됐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서기 위한 진정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공항 리모델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번듯한 공항보다는 개혁개방과 민생을 챙기는 김정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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