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법안 개정의지가 관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논의는 앞서 삼성물산 합병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촉매제가 됐다.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엘리엇과의 주총싸움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승부의 분수령을 갈랐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는 국민연금이 총수일가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이 같은 사실은 궁극적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재벌총수나 오너의 전횡을 견제하고, 기업구조 개선에 나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 국민연금의 적극적 역할에 현실적 제한사항 ‘둘’
논의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참여했던 이혜훈 전 최고위원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롯데의 8개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1.5조가 빠져나갔는데 국민연금이 이 회사들에 최대 13%까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연금”이라며 국민연금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국민연금 역할론에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일 새누리당 주요당직자 회의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는 “롯데그룹 시가총액이 앞으로 얼마나 더 빠질지 모르는데,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지켜낼 수 있도록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방안을 강구하라”며 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이 같은 주문에도 불구,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법과 제도라는 두 가지 측면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당장 현실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의 투자운용내역이 공개됨으로서 투자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시장법 147조 등에 따르면 경영참여를 위한 지분보유일 경우, 5일 이내에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 신고해야 한다. 국민연금 역시 의결권 행사 외에 임원인선과 정관변경 등 경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신고를 해야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대규모 자금운용이 시시각각 공개되면서 투자자들이 이를 따라가거나, 혹은 반대되는 선택을 할 수 있어 시장이 왜곡되는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 국민연금법 개정 움직임, 국회의원들의 의지가 관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대한 현실적 문제가 불거지자 김무성 대표도 발언 3일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김 대표는 10일 오후 기금운용본부장의 보고를 받은 뒤 취재진들에게 “적극적 행사를 하게 되면 다른 제재가 따른다고 한다”며 “소극적인 주주권 행사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오히려 사회적 손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의 경영참여가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국회 차원에서 법안을 개정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현행 보건복지부 장관인 국민연금 운용주체를 분리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에 이관시키는 방안과 국민연금의 일부 주주권 행사 내용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목적’에서 제외시켜 공개의무를 지우지 않게 하는 방안 등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김재원 의원은 “주주권 행사를 통해 국민연금운용범위를 넓히자는 주장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그것이 결국은 경제민주화의 근간이 될 것”이라면서 “자본시장법 개정뿐만 아니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소속 국회의원들의 실행 의지다.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2012년 발의됐으나 논의안건에도 올라가지 못한 상황이다. 현안 이슈와 여야의 당리당략에 따라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3년 가까운 시간 잠만 자고 있었다는 의미다.
최근 ‘태완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완전히 폐지된 것이 비슷한 사례로 제기된다. 태완이 사건이 법안 처리에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태완이 가족은 해당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두어 달만 일찍 처리됐다면 태완이 사건도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골든타임을 놓친 국회의원들의 늑장처리가 도마에 오르는 상황이다.
보건복지위 소속 새정치연합 김성주 의원은 이 같은 지적과 관련 “법안이 제출되면 정부나 국회 전문위원, 재계와 노동계 등 각기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게 된다”고 해명하면서,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워낙 사회적인 의견이 분분하다보니까 본격적으로 논의에 올려놓고 하지 못한 소극적인 점이 있었다, 반성한다”며 추후 반드시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