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카라와 리더 한승연.
[시사위크=홍숙희 기자] ‘생계형 아이돌’, ‘안유명한 걸그룹의 안유명한 리더’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최고의 걸그룹의 위치까지 올라섰던 카라와 카라의 리더 한승연을 따라다녔던 수식어다. 굴욕의 세월에서 최고의 위치까지 경험하고 이제 28살로 걸그룹으로서는 다소 원로(?)가 된 한승연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네에서는 기질이 보였는데, 막상 데뷔해보니 바닥이 다른 거에요, 내가 8시간씩 연습하고 노력해야 간신히 해날 수 있는 것들을 재능 많은 사람들은 연습 없이도 그냥 하더라고요”

<한겨레신문>이 개관한 미디어카페 개관 기념 토크콘서트에 첫 주자로 참석한 카라의 한승연의 말이다. 실제 다수의 걸그룹 멤버들은 수년간의 연습생 시기를 겪으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고 겨우 데뷔한다. 그 과정에서 버티지 못하거나 재능이 없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힘든 경쟁을 뚫어내고 막상 데뷔하더라도 성공은 장담하지 못한다.

카라 역시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등 준비된 걸그룹들의 틈바구니 속에 고배를 마셨다. 무엇보다 다른 걸그룹들에 비해 준비가 덜 되었던 터라 1집 활동은 마이너스 이미지만 남겼고, 메인보컬이 팀을 떠나는 상황까지 이른다. 이 상황에서 한승연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다발적으로 출연, 비중이 역할을 하면서도 팀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 ‘켠김에 왕까지’ 등 케이블 채널에 한승연이 자주 등장하던 이유다.

▲ 스스로 재능도 없고, 준비도 덜 됐다는 한승연은 누구보다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으로 자신을 극복해냈다.
“신인 때는 유명하지 않다는 점에 말을 쉽게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도)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웃으면서 인터뷰를 해야 했거든요. 그게 참 힘들었죠”라고 한승연은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2집 앨범 ‘락유’가 성공하고 일본에서도 반응이 오면서, 카라는 당대 최고의 걸그룹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한승연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승연은 “매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그 와중에 말도 잘 안 통하는 일본 활동을 소화했어요. 일본에서 리허설을 하고 한국에 와서 리허설을 하고 다시 일본으로 넘어갔죠. 얼굴이 붓고 춥고 머리칼이 떡 지고...그런 기억들밖에 남아 있지 않아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여유를 가지고 보니 우리가 정말 빛났던 때는 그때였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침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다음’이라는 말로 받았다. 부족한 것, 알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두려워 하지 말고 똑바로 봐야 ‘다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한승연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소속사와의 소송으로 논란이 있을 때 가장 무대에서 열심히 활동했다는 후문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한승연에 대해 <한겨레신문> 기고를 통해 “모두가 준비를 갖추고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꿈꿨던 분야에 필요한 재능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데뷔했다고 말한 한승연은, 그런 사람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온몸으로 전진해왔다”며 “참 잘 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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