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군부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우리들이 체루탄 연기로 가득 찬 길거리와 교정에서, 그리고 암담한 정치 현실에 울분을 토로하던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목이 터져라 함께 부르던 이 노래를 난 지금도 자주 흥얼거린다. 왜냐고? 그 시절이 그립기 때문이야. 당시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농촌 출신이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스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있었지. 그래서 젊음 하나 믿고 뜨겁게, 치열하게, 때로는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군부독재에 당당하게 저항할 수 있었던 거고.

되돌아보면, 우리는 자신보다는 사회와 국가를 먼저 생각했고, 나와 가족의 안락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꿈꾸면서 청년기를 보냈던 것 같네. 물론 당시 우리가 꿈꾸었던 민주화된 세상이 요즘처럼 이기심으로 오염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지옥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 화폐라는 물신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이렇게 추해질 수도 있다는 걸 상상도 못할 만큼 우리들은 사회과학에 무지하고 인간적으로 순진했으니까.

그래도 난 그 시절이 지금보다는 더 좋았다고 생각하네. 젊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을 갖고 정치사회적 모순에 격렬하게 저항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아. 자유와 정의를 외치고 대의를 위해 싸우던 ‘우리들의 20대’가 자꾸 자꾸 그리워. 아직 가난한 시절이라 배가 고프고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체면과 자존심은 버리지 않았었지. 함께 살아갈 세상에 대한 꿈들도 많았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을 보게나. 많은 꿈을 갖고 살아야 할 청춘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청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을 포기하고 힘겹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네. 그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준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어서 미안하고, 세상 잘못 만나 미래에 대한 꿈을 잃고 열패감 속에서 대한민국을 ‘헬조선(지옥 같은 조선)’이라고 자조하는 걸 보면 안쓰럽고. 가끔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를 하면서도 그들 스스로 그런 사회구조를 바꾸려고 정치적으로 조직화하고 행동하지 않는 걸 보면 화가 나기도 하고. 아무튼  ‘지금 여기서’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들을 보는 마음이 매우 복잡하고 심란하네.

점점 많은 청년들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건 통계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18~24살과 25~29살이 각각 19.7%와 12.3%로 장년층인 50~59살의 11.4%, 60~64살의 20.3%와 비슷하네. 여기서 상대적 빈곤율은 기처분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사람들의 비율을 말하네. 올해는 1인 가구의 경우 월 평균 78만원 미만이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람이야.

그러면 청년들은 왜 가난한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야. 정부가 발표한 18~35살 청년층의 실업률은 10% 안팎이지만, 취직을 포기하거나 졸업을 유예하고 학생 신분으로 구직 활동을 하는 청년들을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30%가 넘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일자리를 구한 많은 청년들이 임금이 적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거든.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15~29살 노동자들 중 중위임금의 2/3 미만(2015년 기준 월 104만원)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가 30%에 이르고 있어. 이러니 많은 청년들이 가난할 수밖에.  

게다가 이제 우리 청년들도 대한민국이 누구든 노력만 하면 계층상승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26일에 발표한 <계층 상승 사다리에 대한 국민의식 설문 조사>에 의하면, 계층상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소득과 자산이 적은 20대와 30대에서 크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네. “우리나라에서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계층상승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1.0%가 가능성이 낮은 편이라고 응답했으며,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9.0%에 불과했어. 같은 연구소에서 실시한 2013년 설문조사 때의 부정적 응답률인 75.2%보다 5.8%포인트 상승한 거야. 계층상승 가능성에 대해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세대는 30대로 86.5%였으며, 지난 2년간 우리나라의 사회이동 가능성에 대해 가장 크게 절망한 집단은 20대 청년층이었네. 계층상승 가능성이 낮다는 20대의 응답률은 2013년 70.5%에서 2015년 80.9%로 무려 10.4%포인트나 상승했어.

우리나라 청년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이렇게 암울하고 비관적인데, 그들에게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고 말할 수 있겠나?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되어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이 실현 불가능한 옛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내일은 해가 뜬다”고 꿈을 잃지 말라고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헬조선’과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포기한 ‘7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개인적인 존재란 환상일 뿐이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니 정치적으로 각성해서 행동하라고 다그친들 그들이 받아들이겠는가? 안타깝게도 우리 젊은이들에게 드리워진 어둠이 너무 깊고 진한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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