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올라 중국인민군의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위치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5번째 위치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중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60여 년 전 김일성 북한 주석이 모택동 주석과 참관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다.

3일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70주년을 기념해 1만2,000여 명의 병력과 500여 점의 무기와 장비가 동원된 최대 규모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근혜 대통령 뿐만 아니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반기문 UN사무총장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고위급 주요인사 65명이 함께 참관했다.

◇ 중국인민군 경례받은 박근혜, 총구를 대한민국에 돌리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

이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자리는 시 주석의 오른편 두 번째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이었다. 시 주석의 왼편에는 중국 측 인사들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을 크게 예우한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대신해 열병식에 참관한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자리는 첫줄이었으나 가장 끝 자리였다. 중국의 외교상대국가로 한국이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고 알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일관된 견해다. 앞서 북한의 도발정국에서 “중국 전승절을 방해하는 어떤 행위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당국의 메시지는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증이다.

무엇보다 국가수장의 군대 사열과 외국정상에 대한 의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열병식은 외교적·정치적 상징성이 적지 않다. “중국인민군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례를 하는 장면은 다시는 총구를 대한민국을 향해 돌리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세계에 하는 것이 될 수 있고 북한에는 그만한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게 하태경 의원의 설명이다.

▲ 열병식은 의전행사 외에 정치적, 외교적 상징성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중국인민군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례를 한다는 것은 총구를 대한민국에 돌리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고, 북한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박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참석은 일찌감치 정해놓고도 열병식 참석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이번 전승절을 보이콧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나란히 열병식을 참관하는 것 자체가 한미군사동맹에 균열로 해석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열병식 참석에 미국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더구나 아베 총리가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가능하게 하는 ‘안보법률’ 처리를 위해 이번 장면을 악용할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열병식 참관, 동북아시아 외교에 중요한 위치 선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박 대통령이 열병식 참석을 결정한 데는 동아시아 질서에 ‘캐스팅 보트’를 쥐고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기존 냉전구도가 깨진 지 오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단계에 와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은 신밀월관계를 맺고 중국 견제에 나선 상황이고, 중국은 중러관계와 한중관계 개선으로 압박전선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이 모두 우리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경도되지 않는 균형외교로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 정치권에서는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이 모두 우리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경도되지 않는 균형외교로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분석하고 있다. 캐스팅 보트를 쥐었다는 의미다. <사진은 자금성에서 천안문 광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각국 정상과 대표들>
이에 대해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이분법을 깨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다자간 회담을 통해 중국을 협력자로 만든 것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고 평화통일로 나아간다는 사고의 틀을 버리고, 평화통일이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국제사회가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중국 등 국제사회에 건설적 역할과 협력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며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주문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도 이번 열병식 참석과 방중외교에 대해 “동북아시아 외교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행보였다”고 높게 평가했다.

특히 정 전 장관은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관계를 복원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고 무엇보다 중국의 협조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미국에 대한 선물”이라며 “우리는 이제 중국으로부터 받아낼 것이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도록 회유하는 것”이라고 외교적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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