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난 마음이 심란할 때는 시를 읽네. 지난 며칠 동안 우리 서민들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담은 시들이 자주 눈에 띄더군. 60살이 넘은 내 눈에도 지금 우리 서민과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위태롭게 보이는가 보네. 먼저 시 한 편 읽고 이야기를 시작하세. 김명수 시인의 <개미>라는 시일세.

“개미는 허리를 졸라맨다/ 개미는 몸통도 졸라맨다/ 개미는 심지어 모가지도 졸라맨다./ 나는 네가 네 몸뚱이보다 세 배나 큰 먹이를/ 끌고 나르는 것을 여름 언덕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네 식구들과 한가롭게 둘러앉아/ 저녁 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본 적 없다./ 너의 어두컴컴한 굴속에는 누가 사나?/ 햇볕도 안 쬐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가 사나?”
 
내 눈에는 대한민국이 많은 사람들이 한 평생 일만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개미왕국’처럼 보인다네. 전윤호 시인도 <서른아홉>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하루 세 시간 출퇴근하고/ 열두 시간 일하고/ 여섯 시간 자고/ 남은 세 시간으로/ 처자식을 보살핀다.”고 말했지.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가까운 나라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12시간 일하고 6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거나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는 ‘저녁 있는 삶’은 왜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을까? 왜 우리나라는 외국 사람들에게 ‘일 중독자 Workaholics’의 나라로만 보일까? 많은 사람들이 ​60살이 넘어서까지 허리와 몸통과 모가지를 졸라매면서 일을 하는데도 살림살이가 별로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시인은 “햇볕도 안 쬐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가 개미굴 속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네. 우리 사회에서 “살이 찐 여왕개미”가 누구이겠나? 왜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6시간도 자지 못하면서 열심히 일만 하는데도 빈부의 격차는 커지고 빈곤 가정은 대를 이어 가난하게 살아야만 할까?

정부여당은 노동개혁 없이는 경제도 좋아질 수 없고, 청년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네. 고용절벽에 직면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노동유연화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노조와 노동자들을 다그치고 있어. 그러면서 노조를 일반 국민들로부터 고립시켜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입에 담기 어려운 황당한 막말도 쏟아내고. 당 대표라는 사람이 ‘대기업 강성노조가 매년 쇠파이프로 공권력을 두들겨 패는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진작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을 넘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이란 사람은 “파업은 핵폭탄”이라고 비난하더군.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까지도 모독하는 저들에게 중고등학교 다닐 때 무슨 공부를 했는지, 수오지심이 뭔지는 아는지, 묻고 싶구먼.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요즘 말 많은 ‘인성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닐까?

그러면서 정부 여당은 ‘노동개혁’이라는 말을 사용하더군.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더 쉬운 해고, 파견근로 확대,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기간 확대 등이 포함된   노동유연화를 ‘개혁’이라고 표현하고 있네. 고정희 시인이 <현대사 연구 1>에서 “꽃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습니다/ … / 우아하게 어우러진 꽃밭 앞에서/ 누군들 살의를 떠올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의 적이 숨어 있다면/ 그곳은 아름다운 꽃밭 속일 것입니다// … / 그러므로 말에도/ 몹쓸 괴질이 숨을 수 있다면/ 그것은 통과된 말들이 모인 글밭일 것입니다”라고 경고했던 게 생각나는군. 한국적 민주주의, 유신, 정의사회구현, 노동의 유연화, 노동시장선진화, 민생경제, 녹색성장, 4대강 살리기, 규제완화 및 철폐, 의료선진화, 경제민주화 등등 지난 5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지배 세력들이 자주 입에 올렸던 말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나고 미운 말/ 건방지게 개성이 강한 말/ 누구에게나 익숙지 못한 말/ 서릿발 서린 말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 “미끄럼타기 쉬운 말/ 찬양하기 좋은 말/ 포장하기 편한 말뿐”이네.
 
그러면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말들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는가? 정의사회가 구현되었거나 경제민주화가 실현된 지상낙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일을 하면서도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헬조선’이 어디인가?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늘어난 노동의 유연화로 일하는 사람 절반이 일자리가 불안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일세! 그런데도 지금 집권 세력은 ‘노동개혁’을 하면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하지만 난 회의적이네. 고정희 시인은 아름다운 말 속에 독이 있다는 걸 깨닫는데 서른다섯 해가 걸렸다고 했네.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뉴스가 뜨는구먼.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소득과 청년들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는 대타협이었으면 좋으련만… 정종연 시인의 <그 도시의 아침>으로 오늘 편지를 마감하세. 정말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할까?

“다급한 발걸음이 때론 뻘밭의 게떼처럼 왁자하다 도대체 되물을 틈도 없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실천하듯 용감하게 대륙횡단열차에 타려는 듯, 적색불이 깜빡깜빡해도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질주하고 마는 군상들 -지하도든 전철이든 혹은 도로 안팎에서 뛰고, 전속력으로 내달리다가 혹은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에서도 안절부절못하는 그 도시의 아침은 속도들의 질주가 눈부실 뿐… 선잠에 취한 채 가방을 둘러멘, 양복을 걸친, 혹은 양장을 입은 사람들 모두가 아수라 경주 속에 내달리는 한 마리 적토마,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햇살에 포획된 아침, 잠시도 멈출 수 없어 돌진하는 저 뼈아픈 눈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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