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시사위크] 김정은 체제가 집권 4년차에 접어들면서 최고지도자를 우상화하거나 찬양하는 북한의 선전선동술이 더욱 정교해지는 양상이다. 부족한 후계수업 기간 때문에 미숙한 리더십이 문제로 지적되다보니 이미지 조작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란 평가다.

특히 노동신문을 통한 선전선동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김정은 체제 등장과 함께 노동신문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PDF 형태의 지면보기로 접할 수 있게 한 점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김정은 관련 동정을 다루는 이른 바 ‘1호 기사’는 무조건 1면 톱으로 만드는 건 김일성·김정일 시기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김정은의 경우 2~3개면에 걸쳐 20여장 안팎의 사진을 무더기로 싣는 일이 부쩍 늘었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치밀한 노림수가 담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동신문에 실린 김정은 관련 기사엔 격자무늬 테두리가 둘러져 특별히 취급된다. 기사 문장은 거의 빠짐없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로 시작한다. 노동신문 1면 머릿기사의 경우 20개 정도의 문장 중 15개 정도가 ‘경애하는…’으로 말문을 여는 게 보통이다.

김정은 기사의 경우 개인 필명이 아닌 ‘본사 정치보도반’이란 바이라인이 붙는 것도 특징이다. 방북 취재 때 만난 노동신문 기자는 “너무 위대한 분을 모신 기사라 어느 개인이 작성할 수 없어 집체작으로 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문을 함부로 접거나 깔고 앉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1997년 9월 북한 금호지구(함남 신포)에선 김정일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이 우리 측 관계자 숙소 쓰레기통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대북지원 경수로 발전소 공사가 한동안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동신문엔 오탈자가 없기로 유명하다. 수령이나 지도자의 이름이 잘못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니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 ‘원수(元帥)’를 ‘원쑤(怨讐)’로 오기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두 단어를 구분해 쓰기 위해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세력’을 의미하는 경우엔 ‘원쑤’로 표기토록한 북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송에서도 오보는 발생한다. 김일성 사망 추모과정에서 발생한 ‘김정일 서거’ 보도는 대표적인 경우다. 북한 매체 초유의 이 사태는 김일성 사망 2년 뒤인 1996년 7월25일 평양방송을 통해 불거졌다. 김일성 사망 추모기사를 읽어내려가며 한껏 감정에 복받치던 찰나에 여성 아나운서가 그만 “위대한 수령 김정일 동지께서 서거하신 날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는 실수를 한 것이다. 이후 촉망받던 여성 아나운서는 북한 방송에서 사라졌고 그 행적은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

관영 TV를 통한 대내·대남 선동에도 신경을 쓰는 징후도 드러난다. 올 들어 HD(고화질)급 위성방송을 시작한 조선중앙TV는 가상스튜디오를 활용한 프로그램도 등장시켰다. 북한은 TV방송에 각별한 공을 기울여왔다. 우리보다 무려 6년이나 앞선 1974년 컬러TV 방송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통치이데올로기 전파나 우상화에 TV가 유용하다는 걸 간파한 때문이다. 북한은 중앙TV 모니터를 통해 우리 방송이나 신문이 북한 소식이나 김정은 동정을 전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HD방송을 실시하는 등 ‘진화’를 보인 것으로 우리 정부 당국은 보고 있다.

관영매체를 통한 보도과정에서 북한 당국의 어설픈 이미지 조작이 드러나 망신을 당한 사례도 종종 나타난다. 2012년 말에는 김정은이 공을 들인 마식령스키장 개장 행사장이 썰렁하자 스키선수 사진을 떼어다 붙여 붐비도록 조작한 사례가 있었다. 김정은이 참관한 상륙훈련을 전한 노동신문은 공기부양정 이미지를 복사하는 방식으로 숫자를 늘렸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김정일 통치 시기에도 일부 조작 사례는 있었다. 수해원조를 더 얻으려 홍수가 난 대동강 수위를 높게 덧칠한 게 대표적이다.

안팎으로 망신을 사면서도 왜 이런 행태를 되풀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엔 외부 시선에 아랑곳 않고 주민을 상대로 한 이미지 조작에 매달리기 때문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문제는 북한 주민들에게 조작을 통한 선전선동이 잘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잇닿은 중국 국경지역을 통해 남한 드라마·가요 등 한류(韓流)가 유입되면서 외부세계에 눈뜨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김정은 찬양교양에 대해서까지 냉소적 태도를 보이고, 강연 도중 ‘쳇, 쳇’하며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민들은 주체사상이나 통치이념보다는 장마당을 통한 경제실리 챙기기에 열중하는 추세다. 아무리 고단수의 선전선동을 동원한다해도 이제는 한계가 있다. 약발이 떨어지고 있는 북한 관영매체의 선전선동이 북한 주민들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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