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결국 법적분쟁으로 비화됐다. (사진=롯데그룹)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아버지를 존경한다.”(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11일 소공동 롯데호텔 대국민사과문 발표 당시)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아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듯 하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불신하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부자(父子)간 다툼으로 비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챈 것은 큰 범죄행위”라며 신동빈 회장을 향해 격노한 대목은,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신동빈 회장의 진정성에도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추락한 기업 이미지와 신뢰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신동빈 회장 입장에선 ‘불효자’라는 오명까지 씻어야 할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 건강이상설 털어낸 신격호, 차남 신동빈에 불신·격노

지난 8월 말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을 당시, 파문에 대응하는 신동빈 회장의 행보는 그야말로 이례적일 정도였다.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책을 내놓는가 하면, 과감한 채용 및 투자계획을 밝히는 등 롯데를 향한 부정적 여론을 완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이고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국정감사에도 직접 증인으로 출석한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어설픈 발음이지만 답변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은 롯데그룹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누그러뜨리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이다.

하지만 한 풀 꺾인 것으로 보였던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은 8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상대로 소송제기를 발표하면서 재점화됐다. 특히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직접 심경을 드러낸 것은 이번 파문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있다.
조선비즈가 공개한 신격호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은 △신동빈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불신 △아버지를 져버린 데 대한 격노 등으로 요약된다.

신격호 회장은 8일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마음대로 했다는 것도 소송 내용에 들어갔느냐, 이건 횡령 아니냐”고 노기(怒氣)를 드러냈는가 하면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이상하다느니 바보가 됐다느니 하며 재산을 가로채는 것은 큰 범죄행위 아니냐” ▲“자기(신동빈 회장)가 장남이 아니니까 장래에 장남으로 승계될 것을 알고 저런 일(분쟁)을 벌였다” ▲“나에게 보고도 없이 제 마음대로 중국에 투자해서 손해를 봤다” ▲“물러서지 말라. 형사 재판을 함께하라”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 그동안 '건강이상설' 등의 논란에도 침묵을 지켜왔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신동빈 회장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이번 '롯데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사진 좌로부터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그동안 숱한 말을 낳아왔던 신격호 회장의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킨 것은 물론,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겠다는 의지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실제 해당 매체는 신격호 회장에 대해 “전반적인 사고 능력이나 판단 능력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면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다는 점과 소송을 통해 자신의 직위와 회사를 되찾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명확했다”고 전했다.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라’고 주장해오던 롯데 측의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진 셈이다.

이런 정황은 신동빈 회장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향해 “경영능력이 없다”고 평가한 것은 향후 경영행보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차남의 행동을 ‘배신’으로 규정하며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대목은 부정적 여론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앞서 신동빈 회장은 일본에서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해임시킨 바 있다. 일각에선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천륜마저 외면한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대국민사과문 발표 당시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한 신동빈 회장의 진정성이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선 소송 보다 ‘불효자’라는 오명이 더욱 뼈아플 것으로 보인다. 그간 신동빈 회장의 고군분투는 그룹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현재 신동빈 회장은 “소송 등에 흔들리지 않고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롯데를 향한 외부의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롯데가(家) 부자·형제 소송 첫 재판이 오는 28일 열린다. 서울중앙지법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가 롯데쇼핑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 기일을 28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한다고 12일 밝혔다.

신동빈 롯데회장 측 법률 대리는 김앤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은 두우·양헌이 맡은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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