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시사위크]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다시 제 궤도에 올랐다. 지난해 2월 이후 1년 8개월 만이다. 이번 만남은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을 계기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이뤄져 8.25 합의가 체결된 데 따른 것이다. 남북 양측 적십자 당국은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한다는 합의에 따라 10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만나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른 실무준비를 비교적 순조롭게 해왔다.

남북 이산상봉은 남측에서 선발된 100명이 2박3일 동안 북한의 가족과 상봉의 기쁨을 나누고, 곧이어 북측이 뽑은 100명이 역시 2박3일 간 남측에서 간 가족과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국군포로나 전후 납북자의 가족상봉을 일부 포함시킨다. 이들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간주하자는 남북 당국간 합의에 따른 것이다.

남북관계의 경색 속에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던 이산가족 문제가 다시 단초를 잡은 건 다행스런 일이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려고 노심초사하다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실향민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쩌다 한차례 치르는 이산상봉 행사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컴퓨터 추첨 방식의 상봉대상자 선정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되자 ‘로또상봉’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1988년부터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실향민은 12만9,600여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인 6만3,400여명은 끝내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한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상봉신청자 중 54.3%인 3만5,900여명이 대한민국 평균수명인 81.9세(2013년 기준)를 넘어섰다. 고령 이산가족들이 살아서 상봉할 수 있는 시간이 한계에 달했다는 얘기다.

찔끔찔금 100명씩 시혜성으로 치러지는 상봉행사로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남북한 이산가족의 만남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정례화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15경축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생존 이산가족 6만명의 명단부터 건네 북측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지난 8·25합의에서 남북 양측이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하였으며…”라고 명시한 점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순순히 호응하고 나올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체제에 균열이 갈 수 있는 민감한 정치 사안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북한은 상봉에 내보낼 북측 가족을 사전에 집결시켜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상봉 이후에도 사상교양을 통해 동요를 막는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실수로 민낯을 드러낸 생생한 사례도 있다. 5차 상봉(2002년 9월) 때 북측은 70~80대 고령 상봉가족을 금강산호텔 식당에 모아놓고 “장군님(김정일을 지칭)이 은혜를 베풀었는데 남조선 가족을 만나 망탕(엉망진창)을 쳤다”며 자아비판을 시키고 반성문을 쓰게 한 일이 있다. 남측 취재기자들에게 이 현장을 들킨 북한 적십자회 간부들은 당시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기도 했다.

상봉 규모의 확대를 꺼리고 장소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남북 각 100명, 금강산 상봉’이란 틀을 고집하는 것도 이산가족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북한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사실 금강산에서의 만남보다 서울·평양 교환상봉으로 가야한다는 지적이 이번에도 관철되지 못한 점에 대해 실향민 사회는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북측 지역인 금강산에서의 상봉은 여러모로 부담스럽다는 점에서다. 북측 가족들은 감시요원의 눈길이나 도청 우려 때문에 속내를 털어놓기 어렵다. 우리 실향민들도 북측 가족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자유로운 만남이나 속내를 털어놓는 이야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평양 상봉을 유지했다면 고령 이산가족이 교통이나 숙박이 불편한 금강산 골짜기로 찾아가야하는 불편함도 없었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온 6·15공동선언에 따라 그해 8월 이뤄진 첫 상봉은 서울·평양 교환 방식이었다. 하지만 제3차 상봉까지 치른 뒤 북한은 금강산 상봉을 돌연 주장하고 나섰다. 서울을 다녀간 북측 가족들이 한국의 발전상에 동요하고, 소문이 번지자 부담을 느낀 것이란 게 우리 당국의 해석이다. 북측이 버티고 나서자 김대중 정부는 상봉 장소를 금강산으로 옮기는데 동의해줬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때 좀 더 버텼더라면 북한이 사소한 발언까지 트집 잡아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툭하면 중단시키는 문제 등이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북한은 9차 상봉(2004년 4월) 때 남측 지원요원이 금강산 바위에 새겨진 ‘천출명장(天出名將)’ 이란 글귀를 보고 ‘김정일이 천민출신이란 의미냐’고 농담한 걸 문제 삼아 일정을 중단시켰다. 또 12차(2005년 11월)와 13차 상봉(2006년 3월)에선 납북어부 가족의 만남을 리포트하던 우리 TV방송기자가 ‘나포’, ‘납북’이란 표현을 썼다며 판을 깨려 들었다.

실향민 사회는 이번 상봉을 계기로 이산가족 문제의 통 큰 해결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매년 9월 25일인 이산가족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전담기구인 이산가족교류재단을 만드는 등 실질적 해결의지를 정부가 보여 달라는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산가족교류재단의 경우 생사확인이나 상봉을 지원하는 것 뿐 아니라 향후 통일에 대비해 남북 가족의 만남을 가능케 할 유전자 채취·보관 같은 업무, 이산가족 정책이나 연구 사업을 등을 진행하는 전담기관으로 역할이 요구된다.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두고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우물쭈물하다간 통일 이후 후세들로부터 “최우선 현안이라고 말만 앞세우더니 결국 이산가족 숙제를 풀지 못했다”고 비난받을 게 뻔하다는 말도 나온다. 국제사회는 우리를 “체제와 이념 대결에 빠져 가족의 생이별을 강요한 모질고 독한 민족”이라고 기억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실향민들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이산가족 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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