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씨감자 캐는 날’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부담돼 관련 행사를 취소했다. 하지만 전국에서 찾아온 각계각층의 지지자들과 취재진들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사진|전북 순창=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전북 순창=소미연 기자] “행사한다고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정동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웃으며 말했다. 당초 구상했던 ‘씨감자 캐는 날’ 행사를 취소했지만, 도리어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행사 취소를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찾아온 각계각층의 지지자들과 취재진을 상대하면서 정동영 전 고문은 “(행사를 진행했으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랬다. 정동영 전 고문의 ‘씨감자 캐는 날’로 알려진 지난 14일, 전북 순창군 복흥면 답동마을 어귀에는 줄지은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답동마을 산자락의 한 토담집이 정동영 전 고문의 새 거처다.

◇ ‘씨감자 캐는 날’ 저녁 토담집 마당서 조촐한 식사

이날 저녁 토담집으로 돌아온 정동영 전 고문은 지지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모두 돌아간 뒤 정동영 전 고문과 가까운 지인들만이 남은 자리였다. 때문일까. 정동영 전 고문은 이들과 스스럼없었다. 토담집 앞 좁은 마당에 급조한 식탁 앞에서, 의자도 없이 자리에 선 채로 두 공기를 뚝딱했다. 지난 6월24일 답동마을로 이사 온 이래 처음으로 가진 지지자들과의 집밥 식사였다. 정동영 전 고문은 “숟가락이 두벌 밖에 없다”면서 “(지지자들과) 다 같이 밥을 먹은 것도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고문의 말처럼 세간은 단출했다. 방 한 칸은 안방으로 사용하고, 다른 방은 거실로 사용했으나 책상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민혜경 여사의 공간은 사실상 부엌이 전부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민혜경 여사는 불평이 없었다. 이날 기자와 만나서도 “서울보다 낫다”면서 “예전엔 신문을 많이 봤는데, (여기 와서 신문을) 안보니까 살 것 같다”고 말했다.

▲ 정동영 전 고문은 지난 4·29 관악을 재보선에서 낙선한 이후 고향인 전북 순창으로 낙향했다. 비어있는 농가에 월세 10만원으로 세들어 산지 어느덧 5개월째다. 아래 사진은 정동영 전 고문이 출퇴근하고 있는 씨감자연구소다. <사진|전북 순창=소미연 기자>
정동영 전 고문도 같은 대답을 내놨다. 그는 “내가 원래 산골 출신 아닌가. 불편하지 않고 좋다”면서 “뉴스를 안보면 못사는 줄 알았는데 살아지더라”고 말했다. 정치와 거리를 두는 대신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토담집 앞에 응접실을 마련했다. 집안으로 손님을 모시기 어려운 정동영 전 고문의 사정을 헤아린 지지자들이 팔을 걷어붙인 결과물이다.

하지만 찾아오는 누구도 정동영 전 고문의 정계 복귀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입도 없고, 귀도 없다”는 기존의 입장이 되풀이된 것. 그래서 지지자들도 ‘씨감자 캐는 날’을 기다렸던 터였다. 앞서 여의도 정가에선 이날을 정동영 전 고문의 정치활동 재개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그간 정동영 전 고문이 “11월이면 내가 재배한 씨감자를 캐게 된다”며 정치활동 재개 시점에 대한 질문의 답변을 미뤄온 만큼 씨감자 농사가 마무리되면 다른 답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정동영 전 고문은 ‘정치적 오해를 사기 싫다’며 행사 자체를 취소했다.

다만 정동영 전 고문은 이날 기자와 만나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선 선문답으로 대신했다. 그는 “겨울이 와야 봄이 오지 않겠나”고 반문하며 “겨울이 오면 봄도 오고, 봄이 오면 꽃이 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눈이 많이 오면 한 번 더 와라”고 덧붙였다. ‘씨감자 캐는 날’에서 ‘한겨울’로 정치 행보에 대한 답변을 미룬 셈이다.

하지만 다음 대화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곳이) 대관령 다음으로 눈이 많이 온다. (폭설로) 교통두절이 한 달 씩 되기도 한다”는 정동영 전 고문의 설명에 “오지 말라는 말 아니냐”고 기자가 되묻자 주변에 함께 있던 지지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소리로 웃던 정동영 전 고문은 끝내 부인하지 않았다.

◇ 장작 패고 시래기 말리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

정동영 전 고문은 이번 겨울을 토담집에서 보낼 계획이다. “장작도 다 패 놓았다. 시래기도 잘 말려 놨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정동영 전 고문의 모습에서 영락없이 농사꾼의 면모가 나타났다. 조금 걱정스러운 것은 추위다. 시골집이라 우풍이 심한데다 화목보일러가 기대만큼 따뜻하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정동영 전 고문은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두 신을 일이 없다. 보통은 등산화 신고, 비오면 장화를 신는다”면서 “적적할 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답동마을에선 정동영 전 고문을 둘러싼 훈훈한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정동영 전 고문이 집집마다 3년 된 감나무 하나씩 직접 심어줬다는 것. 이웃인 허모 씨는 “감나무 값이 얼마나 하겠나. 성의가 너무 고마웠다”면서 “감을 먹을 때마다 (정동영 전 고문의) 고마운 마음이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다. 허씨는 정동영 전 고문이 심어준 감나무가 행여 얼어 죽을까 보온재로 겨울옷을 입혀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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