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前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사위크] 반기문 UN사무총장 방북 문제가 지난 5월 개성공단 방문 무산 이후 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방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지 그가 UN사무총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반기문 총장은 한국인이자 한국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는 인물이다. 만일 그가 성공적인 방북을 통해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와 안정 문제를 잘 해결한다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여반장일 것이다.

사실 반기문 총장의 방북은 평화를 실현시켜야 할 UN 사무총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임무다. 어쩌면 너무 늦었다고도 할 수 있다. UN은 1945년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모토에서 출범했다. 하지만 그동안 UN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고, 지금도 세계는 전쟁 중이다.

한반도 역시 세계에서 가장 긴장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이라크-시리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현재의 위험지역이라면, 한반도는 미래의 위험지역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에는 남북간 소소한 충돌이 지속되고 있고, 언제 전면전으로 비화될지 모르는 위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한다는 것은 UN의 직무유기다. 비록 남한엔 유엔사령부(UNC)가 있지만 정전협정 유지조차 힘겨워 하는 형편이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 체제 구성은 꿈도 못 꾸고 있다.   

남북관계는 2008년 이후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간 무력 충돌이 꾸준히 발생했고, 정례적인 대화와 경제협력은 단절돼있으며 남북 최고 당국자간 불신이 지속되고 있다. 겨우 개성공단만 가동되고 있지만 더 이상의 확대는 없다. 지난 8월 4일엔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했고, 다행히 ‘8.25 담판’ 이후 남북관계는 그런대로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 핵문제로 인해 남북간에 큰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기문 총장의 방북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반기문 총장이 방북해 북한문제, 남북문제 등에 있어 큰 성과를 낸다면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지도 모른다.

◇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 필요… ‘업적 쌓기’ 접근 안 돼

우려도 없지 않다. 우선 반기문 총장 방북 자체가 무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난 16일 반기문 총장의 방북 추진 보도가 전해진 뒤 그의 방북에 대한 인정과 부정이 교차되고 있다. 물론 현재로선 방문 자체는 확실하고 시기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가의 정상으로 대우받는 반기문 총장 방북이 ‘이웃집 나들이 가듯’ 가볍게 이뤄질 문제는 아니다. 의전, 의제 등이 사전에 조율돼야 할 것이고 ‘특수국가’인 북한방문에 대한 국제적 지지도 얻어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미국의 입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사전에 원만히 타결되지 못하면 반기문 총장의 방북은 언제든지 무산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의전문제는 북한이 반기문 총장을 국가원수로 대접해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양공항에서 영접하고 단독 정상회담을 할 것인가의 문제다. 과거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 장쩌민 및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공항에서 영접했고, 2009년에는 국가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공항 영접했다.

또한 김일성은 1979년 발트하임 전 UN사무총장, 1993년 브트로스 갈리 전 UN사무총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반기문 총장도 이에 상응하는 영접을 받아야 방북이 가능할 것이다.

반기문 총장이 평양공항을 통해 가느냐 아니면 1993년 브트로스 갈리 전 총장 방문 때처럼 판문점을 통해서 가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반기문 총장 입장에서는 판문점을 통해 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반기문 총장이 북한에서 어떤 장소를 방문할지도 사전에 조율해야 할 문제다.

둘째로 의제문제 역시 중요하다. 반기문 총장이 북한에 가는 것은 ‘소풍이나 놀러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북한 인권 문제, 평화협정 문제, 김정은의 국제형사재판소(ICC)제소 문제, UN안보리의 대북 제제 문제 등 논의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다.

반기문 총장은 북핵 및 북한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김정은은 자신에 대한 UN총회의 ICC제소 촉구, 매년 반복되는 UN의 대북 제제, 평화협정 체결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특히 김정은은 반기문 총장에게 UN의 ‘편파성’과 UN 총회의 자신에 대한 ICC 제소 촉구에 대해 강력히 항의할 것이다. 따라서 의제와 상호입장이 사전에 어느 정도 조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북한다면, 자칫 김일성으로부터 “UN은 핵문제에서 빠져라”, “유엔사를 해체하라” 등의 ‘훈계’만 듣고 온 브트로스 갈리 전 총장처럼 될 수 있다. 이 경우 반기문 총장은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고, 대권 역시 당연히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 <사진=뉴시스>
세 번째는 국제정치적 여건 상 방북이 적절한지 여부다. 프랑스에 대한 IS의 처참한 테러로 강대국 거의 모두가 ‘IS와의 전쟁’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기문 총장이 ‘잠정적’ 테러지원국인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적절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해 UN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고, UN총회 제3위원회는 지난해처럼 UN총회가 김정은을 ICC에 제소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기문 총장이 방북한다면 국제사회의 의문부호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미국 공화당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압박하고 있다. 아무리 UN이 초국가적이고 중립적인 기구라고 하더라도 반기문 총장이 미국의 의사를 무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네 번째로 한국과의 조율도 중요하다. 한국은 남북문제의 당사자이고, 박근혜 정부는 나름대로 김정은 정권을 ‘길들이기’ 위한 치밀한 대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게는 반기문 총장의 방북으로 인해 대북 전략이 꼬이고 김정은에게 ‘면죄부’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이든 아니든 반기문 총장은 여당이 활용하려고 하는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다. 여권으로서는 반기문 총장이 방북으로 인해 어떤 정치적 훼손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방북을 통해 반 총장에게 100% 이상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이를 허락할 가능성이 높다.

반기문 UN사무총장 방북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의 방북을 계기로 6자회담이 재개되고 남북대화의 물고가 터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만 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의 지난 2002년 방북을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당시 고이즈미 전 총리는 북한으로부터 일본인납치 시인과 사과, 납치 일본인 송환 등의 성과를 거뒀지만, 이후 일본 내에서는 엄청난 반북 분위기가 조성돼 지금까지도 북일관계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UN사무처는 반기문 총장 방북 이후 또 다른 악재가 터지지 않도록 북한을 잘 아는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방북 및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이나 ‘업적 쌓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북을 통해 성취해야 할 ‘내용’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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