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총장의 방북이 가시권에 올랐다. 그간 노코멘트로 일관했던 유엔 측은 북한당국과 방북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공식 인정했다. <사진=신화/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유엔이 공식적으로 반기문 총장의 방북추진을 인정했다. 날짜까지 특정된 것은 아니나, 그간 ‘노코멘트’로 일관해오던 유엔이 긍정하면서 반기문 총장의 방북 자체는 확정적이다. 이로써 반기문 총장은 역대 유엔 사무총장 중 세 번째로 북한땅을 밟게 됐다.

18일(현지시간)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총장은 한반도 내에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평화와 안정을 증진시키기 위해 북한 방문을 포함해 건설적 노력을 할 용의가 있다”면서 “(방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조선중앙통신발 ‘23일 방북’ 보도에 대한 부인이었다. 분명한 것은 ‘방북’ 자체는 확실해졌다는 점이다.

역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이다. 반 총장이 국빈급 대우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과의 어떤 형태로든 면담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김 위원장이 세계 주요국가들의 정상들과 회동한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반 총장이 첫 문호를 여는 셈이다. 다만 정상회담이 아니라는 점에서 합의서 도출은 어렵고, 공동보도문 수준이 예상된다.

◇ 반기문 방북 성과에 따라 ‘대망론’→‘대세론’

유엔의 근본적인 설립목적이 ‘국제평화와 번영’인 만큼, 반 총장은 북한의 핵무장과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전달할 예정이다. 마침 1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3위원회는 전체회의를 통해 북한정권의 인권침해를 비판하며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상황이다. 아울러 북핵문제가 동북아 군비경쟁을 촉진하는 등 번영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방북으로 북한의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긴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막혀있는 남북관계에 물꼬를 트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평가다.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는 대결양상으로 흐르면서 대화와 경제협력은 단절됐다. 지뢰도발 정국에서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기도 했다. 반 총장의 이번 방북에 세계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특히 기대가 큰 이유다.

▲ IS의 파리테러로 전 세계의 분노는 높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흐를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반기문 총장의 방북 논의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의 이번 방북성과 여하에 따라 ‘대망론’이 아닌 ‘대세론’까지 첨치고 있다. 이미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차기대권 적합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인지도는 충분한 반면, 마땅히 국내에서 내세울만한 업적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물론 세계의 여느 지도자도 쉽게 해내지 못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낸다면, 유엔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노벨상도 바라볼 수 있다는 평가다.

기대감은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도 나왔다. 20일 tbs라디오에 출연한 새정치연합 안민석 의원은 “반 총장이 남북 평화의 전도사로 자리매김한다고 하면 지금의 대망론이 훨씬 불이 붙을 것 같다”면서 “지금은 반 총장이 여권 성향이 강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정치는 생물이다. 얼마든지 야당과 경쟁력을 합쳐서 대선으로 갈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IS테러로 위기감 높은 북한, 반기문 메신져 이용 ‘노림수’

그러나 이번 방북이 북한의 ‘필요’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IS의 무차별 테러에 국제사회의 분노는 크다. 9.11테러 직후 북한에 가해진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셌던 전례를 살펴보면, 북한이 느끼는 위기감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매년 반복돼온 유엔의 김정은 ICC 제소나 대북제제의 강도가 올해는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북한은 반 총장을 국제사회에 북한의 메신저로 사용하려는 노림수를 가지고 있다. 반 총장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와 인권문제를 논하고 싶겠지만, 북한은 체제보장과 경제제한조치 해소, 내정간섭 반대를 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일성으로부터 “UN은 핵문제에서 빠져라” 등의 ‘훈계’만 듣고 온 브트로스 갈리 전 유엔총장처럼 될 수 있다는 것. 앞서 반 총장의 방북 일정을 놓고 혼선이 발생한 것도 첨예한 의제설정과정에서의 힘겨루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국제사회 질서를 지키지 않는 믿을 수 없는 국가라는 점도 문제다. 앞서 5월 방한한 반 총장은 개성공단 방문 일정을 세웠으나 북한의 돌발적인 ‘불허’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임기종료를 앞두고 업적 쌓기를 위해 성급한 방북을 추진했다가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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