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왼쪽)과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이 찾아왔다. 봄이 오면 벚꽃축제 소식이 들리고, 여름이면 해수욕장 개장 소식이 들리듯 이맘때면 빠지지 않고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송년회, 각종 시상식 그리고 경제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연말 인사’가 그것이다.

한 해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연말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난 1년에 대한 평가와 내년을 향한 준비다. 기업들의 연말 인사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인사만 들여다봐도 그 기업이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또 다가오는 1년을 어떻게 보내고자 하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최근 삼성 등 주요 대기업들의 인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처럼 기업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연말 인사 시즌에 조금은 특별한 행보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시쳇말로 ‘금수저’라 불리는 이들. 바로 재벌가 자녀다.

◇ 특별한 재벌=보통의 사람

지난해 초 ‘마우나리조트 참사’로 세간의 뜨거운 조명을 받았던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그의 외아들은 최근 ‘별’을 달았다. 지난 2일 이뤄진 임원 인사에서 29명의 임원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의 이름은 이규호 ‘상무보’다.

코오롱그룹은 고(故) 이원만 선대회장과 고(故) 이동찬 명예회장이 지난 1957년 창립한 한국나이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외아들(1남 4녀)로, ‘재벌 3세’에 해당하는 이웅열 회장은 20대의 나이에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됐으며 지난 1996년 회장 자리에 올라 20년간 그룹을 이끄는 중이다.

이규호 상무보도 자연스레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다. 미국 코넬대를 졸업하고, MBA 과정까지 마친 그는 지난 2012년 20대 후반의 나이에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하며 회사에 발을 내딛었다. 아버지가 그랬듯, 일찌감치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규호 상무보는 다른 재벌가 자녀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부분이 많다.

먼저 그는 이웅열 회장이 미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태어났다. 따라서 미국 시민권을 받았고, 이는 곧 군복무를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게 현역으로 입대했을 뿐 아니라, UN평화유지군에 지원해 레바논 동명부대로 파견까지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아버지 이웅열 회장과 무척이나 닮은 모습이다. 이웅열 회장은 최전방인 5사단 수색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종종 자신의 군생활 시절 이야기를 꺼내놓을 정도로 애착을 보이기도 한다. 재벌가 자녀들 중 군복무를 제대로 마친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특별하다.

이규호 상무보의 입사 후 행보는 아버지와 조금 달랐다. 이웅열 회장은 뉴욕지사에서 이사로 출발했고,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반면 이규호 상무보는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차장으로 시작했으며, 첫 근무지도 ‘현장’인 구미공장이었다. 이어 건설 및 무역 부문의 코오롱글로벌을 잠시 거친 그는 올해 초 다시 코오롱인더스트리로 돌아왔다. 그 사이 직급은 부장으로 승진했다. 이사에서 시작한 아버지에 비하면 출발부터 달랐던 셈이다.

뿐만 아니다. 그는 보통의 재벌가 자녀와는 달리 수더분한 성격으로 전해진다. 구내식당과 대중교통, 소형차를 이용하는 것이 세간에 회자될 정도다. 물론 보통 사람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와는 결이 다른 재벌가 자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결국은 그도 재벌가 자녀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31살의 나이에 임원이 된 그를 곱게 보는 시선은 결코 많지 않다.

이규호 상무보는 불과 입사 4년차에 차장에서 상무보로 ‘초고속 승진’을 보여줬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일반 신입사원이 대리도 채 달지 못할 짧은 시간이다. 차장에서 부장, 부장에서 임원으로 승진하기 위해 온갖 고생과 노력,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중년들도 있다.

이규호 상무보는 손가락질 받는 재벌가 자녀들과 분명 다르다. 군대도 다녀왔고, 공장에서 구내식당 밥도 먹었다. 하지만 그는 사다리조차 잡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승진 엘리베이터’를 탔다. 결국 그 역시 재벌가 자녀라는 사실엔 달라질 것이 없었던 셈이다.

코오롱그룹은 이번 임원 인사를 발표하며 “실행으로 결과를 만들어야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성과주의 원칙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규호 상무보가 4년 동안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보여줬기에 초고속 승진이 가능했던 걸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의 가장 큰 성과는 훌륭한 아버지를 만났다는 것 아닐까.

이와 관련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평가에 따라 승진하게 됐는지는 밝힐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회장 아들이기 때문에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라는 지적에 대해선 “(이규호 상무보는)차장으로 입사해서 현장도 다 거쳐 오지 않았나. 다른 곳은 처음부터 임원 달고 시작하는 곳도 많다. 나쁘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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