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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준의 북한진단] 김정일 사후 4년, 김정은 정권엔 무슨 일이 있었나
[전현준의 북한진단] 김정일 사후 4년, 김정은 정권엔 무슨 일이 있었나
  • 시사위크
  • 승인 2015.12.1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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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과 김정은. <사진=뉴시스>
[시사위크] 12월 17일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2008년 8월 발병한 후 3년여 간 투병하다 2011년 12월 17일 사망했다.

김정일은 1942년 2월 16일 구소련에서 태어나 1974년 당내에서 후계자로 책봉됐고, 1980년 10월에는 대외적으로 공식 후계자가 됐다. 후계수업을 착실히 쌓던 그는 1994년 7월 부친인 김일성이 사망하자 ‘사실상’의 통치권자가 됐고, ‘3년상’을 치른 후인 1997년 10월 노동당 총비서에 등극하면서 법적인 최고 통치권자가 됐다.

김정일은 1989년 이후 사회주의권 붕괴 도미노, 1990년 이후 미국의 핵압박, 1994년 김일성 사망, 고난의 행군(1995-1997) 등으로 인한 체제붕괴 위기를 극복하고 죽을 때까지 절대권좌를 누렸다.

체제 유지 수단이었던 ‘선군정치’는 그의 ‘아이콘’이었다. 북한 군부는 김정일의 선군정치 하에서 최고의 특권을 누렸다. 이것은 후에 큰 화근이 되었다. 2012년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북한 군부는 ‘부패의 온상’, ‘무사안일주의자’로 지목돼 대대적인 숙청을 당했다. 김정일 사후 4년 동안 북한에서는 하루도 바람 잘날 없이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김정일 사후 4년 동안 북한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후계자 김정은의 최고통치자 등극

▲ 김정은.
첫째, 가장 중요한 일로서 김정은이 많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최고통치권자가 됐다는 점이다. 아직 결론을 내기는 이르지만 김정일의 후계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2010년 9월 많은 예상을 깨고 후계자로 책봉된 김정은은 김정일 사후 ‘100일 탈상’을 치루고 절대 권좌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행로는 순탄하지 않았다. 군부의 보이지 않는 방해가 있었다. 김정은은 군부 장악을 위해 2012년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을 ‘철직’시키고, 군부 장악을 위해 고위장령(장성)들에 대한 ‘계급강등’ 정치, 군부 최고 지휘부에 대한 사격경기 등을 실시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다. 또한 김정은은 군부 장악을 위해 최고 심복 당료인 최룡해와 황병서를 번갈아 군총정치국장에 임명했다. 북한판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인 것이다.

더욱 큰 사건은 2013년 12월 ‘1등공신’ 장성택 처형이었다. 고모부이자 김정은 정권 창출의 1등공신인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김정은 권력 장악 여부의 분수령이었다. 장성택은 노회한 당료였고 많은 지지자들을 거느린 ‘묵치’였다. 김정은은 권력 장악을 위해 ‘토사구팽’을 택했다. ‘왕권’과 ‘신권’간의 쟁투는 왕권의 승리로 끝났다. ‘3대세습’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난 5월 현영철 처형, 11월 최룡해의 ‘철직’은 사건도 아니었다.   

둘째, 주체사상이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승격됐다. 후계자 김정은은 그의 부친에게 감읍해 2012년 4월 개정헌법을 통해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했고, 같은 해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일성 절대사상인 주체사상을 김일성·김정일 절대주의인 김일성·김정일주의로 격상했다. 수령절대주의는 최소한 북한내에서 만큼은 맑스-레닌주의에 버금가는 체계화된 이론이 된 것이다. 역사는 수령에 의해서만 구축되고 수령후계자 역시 그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게 됐다. 이제 북한 내에서 김정은을 범접할 수 있는 자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며, 할아버지, 아버지를 높임으로써 자신도 함께 높아진 셈이다.

◇ 핵보유국 선언과 비대칭 무기 전력 강화

셋째,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행하는 ‘병진로선’이 등장했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북한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해주든 그렇지 않든 김정은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행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핵보유를 했으므로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북한을 침략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북한핵무기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상대를 정확히 알면 두렵지 않은 데, 반대일 경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인 3월 31일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발표했다. 북한은 비대칭 무기인 핵무기를 보유했으므로 재래식무기 개발 비용을 인민경제 활성화에 투입하겠다고 주장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현재 북한에서는 평양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서 건설붐이 일고 있다. 좋게 해석해서 부패 군부의 돈을 빼앗아 민생경제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의 지지가 올라갈 수 있는 요인이다. 김정은 정권 안정에 대한 논쟁이 있으나, 적어도 단·중기적으로는 안정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한편, 핵문제와 관련해 김정은은 지난 10일 ‘수소폭탄 보유’ 발언까지 해 세계를 경악시켰고, 그가 애지중지하는 모란봉 악단의 북경공연까지 중지시키는 빌미를 만들었다. 물론 모란봉 악단 공연 중단은 공연내용의 과도한 김정은 우상화 및 핵실험·미사일 발사 장면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이 중국 최고지도부의 김정은 우상화에 대한 거부감을 야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넷째, 군사력은 더욱 증대됐다. 김정일 사후 4년 동안 북한의 핵·장거리 미사일·잠수함발사 미사일·중·단거리 미사일 능력 등 비대칭 무기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이 이뤄졌다. 김정은은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을 실시했고, 같은 해 4월과 12월에는 장거리발사 실험을 진행했다. 지난 5월 및 12월에는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을 시험했고, 2012년 이후 각종 단·중거리 미사일을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재래식 무기 개발은 주춤하다. ‘선군정치 없는 선군정치’가 지속되고 있다. 안보에 관한한 김정은은 선친의 경로를 따라가고(경로의존) 있다.

▲ 김정은과 리설주.
◇ 살아나는 경제, 밝아진 외연

다섯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북한 경제는 2012년부터 약 1%정도의 플러스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에 대한 지하자원 수출 증가, 노동인력의 해외 진출, 해외 식당 증가, 관광 수입 증대, 개성공단 정상화, 장마당 활성화, 탈북자 및 재외 동포의 대북 송금 등이다.

여기에 2012년 6월 28일 부분적으로 시행된 ‘6.28 방침’이 농민과 노동자의 노동의욕을 자극해 생산량이 증대되고 있다. 북한 내에는 장마당(일반시장)이 400개가 넘는다. 여기에서 각종 농산품, 생필품, 공산품 등이 거래되고, 심지어 남한, 일본 상품들까지 거래되고 있다. ‘한류’를 유포시키는 ‘불법CD’까지 유통된다. 하나에 100-400달러에 상당하는 손전화(핸드폰)가 400만대 가까이 사용되고 있다.

전당포, 배달업소 등 각종 자본주의식 직업도 늘었다. 평양에서는 교통체증이 일어날 정도다. 평양의 영업용 택시는 1,000대를 넘어섰다. 80% 정도가 ‘돈주(자본가)’의 소유라고 한다. 김정은은 각종 방법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평양을 비롯한 주요도시 건설에 쏟아 붓고 있다. 목하 북한 전체는 ‘건설중’이다. 이제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북한이 아니다.

여섯째, 사회는 더욱 밝아졌다. 김정일 시대의 칙칙하고 암울한 환경은 밝게 개선되고 있다. 김정은은 소년시절 약 6년간을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럽의 현대화된 건물과 공항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모든 부문에서 ‘국제적 기준(international standard)’을 강조하고 있다. 해당화관(2013년), 마식령스키장(2014년), 평양신공항(2015년) 등이 국제적 기준에 맞게 건설됐다. 평양전체는 밝게 리모델링됐고, 평양 각 구역, 지방 주요도시에 롤러스케이트장이 건설되기도 했다.

또한 김정은은 2012년 7월 ‘북한식 걸그룹’ 모란봉 악단을 창단했다. 단원들은 미모에 짧은 치마를 입고 공연하며 북한내는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다. 레퍼토리에는 팝송을 비롯해 각종 서양음악이 포함돼있다.

놀라운 것은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도 없었던 김정은 부인 리설주의 공개였다. 리설주는 현대식 복장을 하고 모란봉악단 초연(2012년 7월)에 나타났다. 이후 김정은과 팔짱을 끼고 현지지도를 다녔다. 당연히 ‘리설주 풍’이 유행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밝아진 것이다. 김정은은 2013년 2월 괴이한(?) 모습으로 우리도 다소 거부감을 느끼는 미국 농구선수 로드먼을 초청해 농구경기를 시켰다. 일종의 자본주의 학습이다.

▲ 지난 8월 DMZ 목함지뢰 사건으로 촉발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
◇ 불안정해진 북중관계, 녹지 않는 남북관계

일곱째, 북중관계는 매우 불안정해졌다. 북미관계나 북일관계는 김정일 시대에도 나빴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김정일 시대엔 더없이 좋았던 북중관계가 후퇴된 것이 주목된다.

시핀핑 체제가 등장할 무렵인 2013년 2월 12일 김정은은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하며 시진핑의 억장을 무너뜨렸다. 이후 한중 정상회담은 6차례나 개최됐지만 북중 정상회담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 10월 10일 중국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의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 참석으로 북중관계가 복원돼 지난 12일 모란봉 악단 북경공연이 기획됐으나 김정은 찬양 일색 및 미사일발사 장면 등 ‘공연내용’ 문제로 무산됨으로써 북중관계는 또 다시 냉각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다만 북한과 주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일치로 인해 북중관계가 완전히 파탄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11월 ‘나선경제무역지대 종합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여기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할 것인데 이것을 조달해 줄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북한이 중국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또한 미국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는 형국에서 북한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덟째, 대남 관계는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앞선 김정일 시대에도 남한 이명박 정부의 ‘북한 길들이기’로 인해 남북관계가 좋지 않았다.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사망 사건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이 중지됐고,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인해 ‘5.24 조치’가 내려져 남북관계는 파탄났다. 11월 연평포격 사건은 남북관계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2012년 김정은 정권 등장이후에도 4월과 12월 2회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2013년의 3차 핵실험과 은하 3호(광명성) 발사로 남북관계는 얼어붙었다. 김정은은 2014년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조성을 강조했고, 19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김정은은 2015년 신년사에서도 같은 내용을 반복했고, 20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못했고, 지난 8월 4일 DMZ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해 남북 간에는 전쟁분위기가 고조됐다. 이에 놀란 중국과 미국의 적극적 중재로 남북한은 ‘2+2 회담(김관진·홍용표-황병서·김양건)’을 통해 전격적으로 ‘8.25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 내용엔 목함지뢰사건 유감 표명, 당국간 회담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6개항이 포함됐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지난 10월 20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고, 지난 11~12일까지 남북 차관급 당국간 회담이 개최됐으나 남측의 이산가족문제 근본적 해결과 북측의 금강산관광 무조건 재개 간의 의결조율이 이뤄

▲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前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지 않아 합의문 도출이 무산됐다. 김정은의 대남 ‘유화정책’을 통한 외화벌이 전략은 남한의 원칙과 신중한 자세로 인해 통하지 않고 있다. ‘5.24 조치’해제도, 금강산 관광 재개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증거다.

김정은 시대는 분명히 이전 시대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내부의 경제·사회 분야에 국한되고 있고 이념, 정치, 군사, 외교, 대남 등의 부문에서는 선대의 경로가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은 선대가 물려준 주체사회주의를 보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표피적 변화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전술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북한의 전략전술을 사전에 잘 파악해 ‘역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의도와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통일 대박’이라는 과실은 기다리면 거저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공력 투입의 결과로 수확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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