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의원이 독자신당 창당을 공식화하면서 천정배 의원이 곤혹스런 입장에 놓였다. 수개월 전부터 신당 창당을 추진하며 주도권을 잡아왔으나, 안철수 의원의 탈당 1주일 만에 흐름이 바뀌었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곤혹스럽다.” 천정배 무소속 의원은 솔직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호남지역 의원들이 안철수 신당에 속속 합류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천정배 의원은 당초 “새로운 인물을 모아 경쟁구도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호남의 현역 의원들을 개혁 대상으로 삼고, 내년 총선에서 기득권 교체를 통한 야권 혁신을 강조해왔던 터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3일 탈당 이후 1주일 만에 전북 유성엽·전남 황주홍·광주 김동철 의원이 동반 탈당과 함께 안철수 신당 합류를 택했다. 여기에 호남지역 의원들의 추가 탈당에 이은 동참도 예상되고 있다. 천정배 의원으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 새 국면 맞은 ‘호남발’ 야권 신당… 안철수에 밀린 천정배

가장 큰 문제는 안철수 신당과 연대 또는 통합의 명분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개혁 대상으로 꼽았던 호남 의원들과 전선을 같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민은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선언을 하루 앞둔 20일 기자들과 함께 한 오찬 간담회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천정배 의원은 이날 “곤혹스럽다”고 거듭 말하며 “안철수 의원과 함께할 수 있는지 여부는 제가 생각하는 가치와 비전을 일단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의원도 서두르지 않았다. 천정배 의원을 비롯한 호남 신당 세력에 대해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으나, 그 시점을 “새정치의 비전과 목표를 해결한 후”로 미뤘다. 결국 야권 신당은 저마다 우선적으로 세 불리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신당의 성패를 좌우할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한 혈투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천정배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호남지역 의원들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 곤혹스런 입장을 밝혔다. 개혁 대상으로 꼽았던 호남 의원들의 합류로 안철수 의원과 연대 가능성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이미 안철수 의원은 탈당 이후 15일 고향 부산에 이어 17일 1박2일 일정으로 전주와 광주를 잇따라 방문했다. 당시 안철수 의원은 “한을 반드시 풀어드리겠다”고 약속했고, “과거처럼 호남에서 ‘안풍’이 불 수 있도록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탈당에 따른 어부지리로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할 경우 “결과에 대해 책임질 것”이라면서 새롭게 얻은 ‘강철수’의 호칭처럼 “소신대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질세라 천정배 의원도 22일 전남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날 전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칭 ‘국민회의’ 창당과 향후 계획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다음달 9일 전북도당 창당대회를 시작으로, 시도별 창당 작업을 진행한 뒤 31일 일산 킨텍스에서 중앙당 창당대회를 개최해 국민회의 창당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게 천정배 의원의 구상이다.

하지만 전망이 밝진 않다. 여의도 정가에선 ‘천정배 의원이 안철수 의원에게 신당 창당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해석했다. 천정배 의원이 수개월째 창당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현역 의원들의 가세는 전무한 실정인데다 여론의 관심도 국민회의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안철수 신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천정배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회의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

안철수 의원의 개인 지지율도 급상승 중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1일 발표한 12월 셋째주 주간 정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안철수 의원은 여야 당대표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7월 2주차(11.8%) 이후 약 1년 5개월 만에 3위로 올라선 셈. 야권에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5.6%p 차로 좁혀졌다.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843명 대상 무선전화 50%·유선전화 50% 병행 임의걸기 방법,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1.8%p 응답률 6.6%)

◇ 한발 물러선 주도권 다툼 “진짜 야당 위해 헌신하면 족해”

때문일까. 천정배 의원은 안철수 의원과 주도권 다툼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정치에 새로운 싹을 키우는데, 진짜 야당을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는데 헌신하면 족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천정배 의원은 “말만 신당은 안 된다”며 야권 연대의 3가지 원칙을 밝혔다. ‘가치와 비전의 연대’, ‘반 패권 연대’, ‘승리와 희망의 연대’가 바로 그것이다. 측근들은 천정배 의원이 안철수 의원에게 “신당 추진 과정에서 고려해 달라”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한편, 안철수 의원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2월 초까지 독자신당 창당 계획을 알렸다. “내년 초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가급적 2월 설 전에 신당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 목표는 정권교체다. 당장 내년 총선에선 개헌 저지선인 100석 확보다.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다. 2년여 전 새정치연합 창당 이후 재도전에 나선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 여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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