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시사위크]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2016년 새해 집권 5년차를 맞는다. 짧은 후계수업 기간과 젊은 나이 등으로 불안할 것으로 예상됐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권력은 ‘예상보다 안정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의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오는 5월 북한이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를 열기로 한 걸 두고도 체제유지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집권 초기 변화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10대 시절 스위스에서 조기 유학한데다 전미프로농구협회(NBA) 출신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는 등 서방 문화에 관심을 보인 때문이다. 3대 세습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뭔가 선대 수령과는 다른 정책노선을 보여줄 것이란 측면도 고려됐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달리 개혁·개방 노선을 택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 4년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유일지배와 수령독재를 강화하고 체제단속의 고삐는 더욱 조였다. 무엇보다 공개처형 등을 동원한 공포정치로 권력 핵심부부터 꽁꽁 얼어붙었다. 일부 온건 개혁노선을 생각하는 세력들이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2016년 새해에는 북한 김정은 체제에 많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적대적이고 체제 대결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대남노선에서 보다 유연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지난 8월 비무장지대(DMZ)내 우리 측 통문에 목함지뢰를 매설해 군 장병에게 중상을 입히는 용납 못할 행태를 보였다.

도발 직후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임이 드러나고, 대북 비판여론이 제기되는 등 궁지에 몰리자 황급히 사태를 수습하려 대화를 제의해왔다. 북한은 ‘유감표명’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고, 우리는 대북 심리전 방송의 중단을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돌아서자마자 목함지뢰 도발이 한·미 당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실망스런 모습까지 보였다.

둘째는 북핵 문제에서 변화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핵 개발은 올 김정은 체제의 향방과 남북관계에 핵심 변수가 될 사안이다. 추가 핵 실험 강행 같은 막가파식 행태가 이어질 경우 북한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더욱 싸늘해질 수밖에 없고, 대북압박의 강도는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물론 2016년에 북한이 핵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북한의 핵 실험 우려가 제기됐지만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 도발을 자제했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이나 대외이미지 구축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도발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은 북한의 이런 상황은 2016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핵 실험을 제약했던 환경적·구조적 요인이 올해도 지속될 것이란 측면에서다. 무엇보다 한·미·일 3국의 북핵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유엔과 미국 주도의 국제제재를 감당해내기 만만치 않다.  

셋째, 경제문제의 해결을 위한 올바른 정책노선의 문제다. 핵 문제는 북한 경제에도 아킬레스건이다. 북핵을 둘러싸고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의 압박을 계속하는 상황 때문이다. 이를 해결 않고는 북한경제의 안정적 성장이나 민생증진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군사비 부담을 줄이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 경제・핵 병진노선의 전면 수정도 요구된다. 김정은이 핵과 경제개발을 양손에 쥐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핵 포기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3년 넘도록 손에 잡히는 성과는 보여주지 못했다. 2015년 신년사에서 “인민생활 향상에서 전변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 대목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농산·축산·수산을 3대축으로 제시하며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한다”고 강조했지만 그야말로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넷째는 장마당을 통한 경제의 폭 넓히기다. 북한 주민들은 노동당이나 당국의 배급보다는 장마당을 통해 자체 조달하는 데 익숙한 모습을 보여 왔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북조선에 있는 두 개의 당 중에서 노동당은 사는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고, 장마당이 최고”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고 한다.

우리 관계 당국은 장마당을 이용하는 북한 주민이 하루 100만~18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 전역에서 모두 300여 곳이 운영 중인데 평안남도 37곳을 비롯해 함경남도 36곳, 평안북도 34곳, 평양 23곳, 나선특별시 5곳 등의 순이라고 한다. 일반 주민은 물론 노동당과 군부의 간부 부인과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일명 ‘돈주’ 등이 장마당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또 거래 품목이 다양화하고 있고, 자전거 수리 등 서비스 업종이 발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와함께 배달 서비스가 점차 일반화되고 매대 자체를 돈을 주고 사고파는 일도 가능하다고 한다.

올해 북한이 가장 신경을 쓸 이벤트는 5월로 예정된 노동당 제7차 대회 개최다. 이는 김정은 체제의 출범 5년차를 맞아 노동당 대회를 열어 새로운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하고, 체제결속을 다지겠다는 의미다.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은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당 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정책노선이나 경제계획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분야에 주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지만 비전제시 쪽에 무게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노선의 제시나 핵 포기와 관련한 중대한 조치가 나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렇지만 김정은이 집권 이후 밟아온 궤적을 살펴보면 코페르니쿠스적인 변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3월 제시한 경제・핵 병진 노선에서 이탈해 김정은이 변화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는 측면에서다. 체제 고수와 변화 사이에서 김정은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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