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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2016년 새해 아침의 단상
[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2016년 새해 아침의 단상
  • 시사위크
  • 승인 2016.01.0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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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2016년 새해 아침이네. 올해는 병신년(丙申年)으로 붉은 원숭이 해야. 원숭이는 십이지 동물들 중 아홉 번째로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류이지.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원숭이를 재주, 장수, 지혜의 상징으로 여겼다고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자성어에는 원숭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네. 잔꾀로 남을 속여 벗어난다거나 형식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한 상황에서 일희일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조그마한 재주를 믿고 까불다가 집중 사격을 받고 즉사한 원숭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일저벌교(一狙伐巧) 등이 대표적이지.

5세기 초에 인도 출신의 불타발타라가 중국 승려 법현(法顯)과 함께 한자로 번역한 마하승기률(僧祈律)에 나오는 원숭이들의 우화에서 유래한 원후취월(猿猴取月)이라는 사자성어도 원숭이들의 어리석음을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네. 정주로월(井中撈月)이라고도 알려졌는데, 우물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모두 물에 빠져 죽은 원숭이들의 이야기일세. 좀 길지만 함께 읽어보세.
 
옛날 인도의 한 숲 속에 500마리의 원숭이들이 살고 있었지. 하늘에 대낮처럼 밝은 보름달이 떠 있던 어느 날, 숲에서 달빛을 즐기며 놀던 원숭이들은 우물에 빠진 둥근 달을 보았다네. 물에 빠진 달을 건지지 않으면 세상이 암흑 속에 묻힐 것이라고 걱정한 원숭이 무리의 대장은 우물에 빠진 달을 건저 낼 묘책(?)을 생각해냈지. “내가 니구율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리겠다. 너희들 중 한 놈은 내 꼬리를 잡고, 나머지는 순서대로 앞선 놈의 꼬리를 잡고 매달려라. 그러면 맨 마지막 놈이 달을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휘황찬란한 보름달이 우물 위에 둥그렇게 떠 있는 날, 500마리의 원숭이들이 우물 속에서 차례차례 앞 원숭이의 꼬리를 잡고 매달려 있는 진풍경을 상상해 보게나. 절로 웃음이 나오지? 하지만 500마리 원숭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원숭이들은 모두 우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네.

허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불가의 가르침일세.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우물에 빠질 리가 있겠는가? 나는 이 원숭이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느 조직에서든 왜 지도자가 중요한 지를 생각했네. 한 조직의 리더가 허상에 집착하거나, 조직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굳이 하려고 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조직원들이 함께 고통을 받는가를 보여주는 우화로 읽었네. 저 원숭이 지도자가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면, 500마리의 원숭이들이 물에 빠져 죽지는 않았겠지. 작년에 교수들이 ‘2015년의 사자성어’로 뽑은 ‘혼용무도(昏庸無道)’도 비슷한 상황을 말하고 있네. 저 원숭이들의 대장처럼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한 나라를 다스리면 사회의 예의법도가 무너져 세상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네.  

오늘은 새해 들어 쓰는 첫 번째  편지이니 자네나 나처럼 ‘게으를 권리’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선문답 같은 시 한 편 읽어주겠네.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이야. 황새, 말, 거북, 달팽이, 굼벵이, 바위 등이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구르고, 그냥 앉아 있는데, 모두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고 하는구먼.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1등만을 섬기는 사회에서 너무 오래 살고 있네. 그래서 뭐든 1등에게 몰아주는 ‘승자독식’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모두 ‘함께’ 사는 방법이 아니야. 타고난 능력의 차이 때문에 완벽한 평등은 불가능할지라도, 무엇이든 - 물질적인 재화든 재능이든 사랑이든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사는 곳이 더 좋은 세상일세. 이제 제발 어디에서든 등수를 매겨 줄을 세우는 짓은 그만 뒀으면 좋겠네. 새해에는 ‘날고뛰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기고 구르는’ 사람들과 함께 결승점을 통과하는 기적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길 기대해 보세.
 
연말이면 자주 듣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4악장에서 <환희의 송가>를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바리톤의 외침이 생각나는구먼. “오! 벗들이여 이와 같은 곡조들이 아니다! 좀 더 즐겁고, 더욱 기쁨에 찬 노래들을 부르지 않겠는가!”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는 새해에는 우리 국민들 모두 이렇게 외쳤으면 좋겠네. "오! 시민들이여, 이건 나라가 아니다. 좀 더 즐겁고, 더욱 기쁨에 찬 대한민국을 만들어보지 않겠는가!" 그래서 삼수강산 방방곡곡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게 안락함이 함께 하는 병신년(丙申年)이 되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