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로템.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ㄱ이란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A시에서 발주한 사업에서 최종 입찰자로 선정됐다. 사업 규모는 100억원. 그런데 ㄱ은 해당 사업을 직접 실시하지 않고, 재차 입찰을 진행해 ㄴ회사를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ㄴ이 입찰 받은 사업비는 80억원으로 줄었다.

즉, ㄱ은 입찰을 따내 다시 낙찰시키는 것만으로 가만히 앉아서 20억원을 챙긴 것이다. ㄱ이 돈을 번 과정과 방법은 가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다름없다. 가능만하다면 누구라도 하고 싶을 일이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 이 일을 둘러싼 논란으로 시끄러운 곳이 있다. 대구와 부산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현대로템이 있다.

◇ 지하철 참사 기억하는 대구, 스크린도어 의혹으로 ‘시끌’

지난해 11월. 현대로템은 지하철 스크린도어 누적 수주액이 1,0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2005년 첫 수주 이후 10여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1,000억원 돌파의 기점이 된 것은 대구와 부산에서 따낸 사업이었다. 부산에서는 지하철 2호선 11개 역사의 스크린도어 사업을 수주했고, 규모는 약 105억원이다. 대구에서의 수주는 이보다 규모가 컸다. 2호선 22개 역사로 규모는 약 233억원이었다.

하지만 두 달여가 흐른 지금, 현대로템은 대구와 부산에서 같은 논란에 휩싸여있다.

논란의 내용은 서두에서 밝힌 것과 같다. 현대로템은 대구에서 수주한 스크린도어 사업을 놓고 재차 입찰을 진행해 하청업체를 선정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적잖은 차액을 남겨 이득을 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거 끔찍한 지하철 참사를 겪은 바 있는 대구였기에 논란은 더욱 거셌다. 대구지역 시민단체는 현대로템이 실제 공사를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수십억원의 이득을 챙겼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현대로템이 챙긴 이득이 전체 사업비의 1/4에 해당하는 56억원에 달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역사회는 들끓었다.

문제가 확산되자 대구시는 지난해 말 해당 사업에 대해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현대로템에 대해서는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사업 추진을 잠정 중단토록 했다. 만약 조사 결과 문제가 확인될 경우 입찰을 아예 취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논란은 대구를 넘어 부산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제기되는 문제의 내용은 판박이다. 현대로템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득만 챙겼다는 것이다.

◇ ‘현대판’ 봉이 김선달?

물론 이러한 하청, 재하청 구조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건설업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묵은 관행’ 중 하나다. 필요성도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은, 딜레마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로템의 행보가 유독 거센 질타를 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 그리고 현대로템이 챙긴 것으로 추정되는 이득의 규모가 공분을 사고 있다.

현대로템이 대구와 부산에서 수주한 스크린도어 사업의 규모는 각각 233억원과 105억원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을 고스란히 하청으로 넘기면서 남긴 이득은 전체 사업비의 20~25%로 추정되고 있다. 수수료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선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먼저, 실제 공사에 필요한 자금이 100% 투입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안전’보단 ‘비용 축소’를 더 고려한 시공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애초에 사업비 부풀리기가 이뤄졌을 가능성이며, 혈세낭비라는 지적이 동반된다.

◇ 현대로템 “억울하다”

갑작스럽게 달아오른 논란에 현대로템은 다소 당황한 모습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대기업이 모자만 쓰고 돈만 챙겨간, 아주 나쁜 기업이 돼버렸다”며 제기된 논란에 대해 오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로템 측에 따르면, 오해의 중심엔 ‘턴키’라는 용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턴키’는 사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부문을 총괄해서 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용어는 현대로템이 스크린도어 사업을 하청업체에 재차 입찰할 때도 사용됐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턴키라는 말을 썼는데, 여기서 턴키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외한 나머지 일을 총괄해서 맡긴다는 의미였다”며 “마치 현대로템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만 챙긴 채 모든 일을 넘긴 것으로 오해가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어 “부도 위험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 대기업들이 총괄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기업의 스크린도어 사업이나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며 “현장사무소 운영과 협력업체 선정, 최종 검사와 시운전, 하자보수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반을 현대로템이 모두 책임지고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즉, 총 사업비와 현대로템이 하청업체에 입찰한 사업비가 다른 이유는 그만큼 돈을 남겨서가 아닌, 현대로템이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비용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현대로템 관계자는 “대구시가 대구도시철도공사를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 중인 것이어서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며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고, 결과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업을 둘러싼 문제제기는 단순히 ‘재입찰’에만 그치지 않는다. 안전인증 관련 사안과 입찰 과정에서의 의혹 등이 얽혀 있다. 이러한 논란은 조만간 나올 대구시의 감사 결과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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