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이순의 나이를 넘기니 내가 책이나 글을 통해서 좋아했던 분들의 부음을 자주 듣게 되는구먼. 어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처음처럼』,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담론』등의 책을 통해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셨던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들었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던 신영복 교수는 출옥 후에 많은 글을 통해 사람과 함께 하는 세상을 꿈꿨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었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좋아하고 따랐지. 그런 분이 희귀한 피부암으로 75세에 생을 마감하시다니… 왜 착하신 분들은 이렇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나는지 안타까울 뿐이네.

오늘은 내가 읽었던 그 분의 많은 책들 중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소개하고 싶네. 이 책은 그분의 마지막 책인 『담론』과 마찬가지로 신 교수가 성공회대에서 일반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해온 내용을 정리한 책일세. 사서삼경과 공자, 노자, 장자, 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 중국의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두루 다루고 있는 이 책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네. 저자는 요즘 학생들이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문 원문을 읽고 해석하고 외우는 방법을 지양하고 있네. 그 대신 학생들이 고전을 통해 오늘날의 여러 가지 당면 과제를 재구성해 보라고 요구하지. 신 교수에게 고전 읽기는 역사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 속에서 현재를 비판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세. 당대 사회에 대한 제자백가의 문제의식을 점검하고, 그런 문제의식이 오늘의 사회적 과제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숙고해야 한다는 거지.

그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500여 년 동안 지속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지금과 많이 닮았다고 말하네. 그래서 부국강병이라는 목표 아래 각축을 벌이던 무한경쟁시대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담긴 거대담론이 꽃피었듯이, 현대 자본주의가 관철하고자 하는 세계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변화시키고 개혁하기 위해서는 담론의 재구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거야. 신 교수는 20세기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의 단초가 동양 사상에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에 동양 고전의 세계를 창고지신의 자세로 읽길 권하네.

저자가 동양고전 강독의 전 과정에 내걸었던 핵심 ‘화두’는 ‘관계론’이네.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단위로 인식한 서양의 ‘존재론’은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자기 존재를 배타적으로 강화하는 강철의 논리가 되며, 경제적으로는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자본주의로, 정치적으로는 전쟁을 통해 부국강병을 꾀하는 패권주의로 나타나게 된다는 거야. 이런 존재론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동양의 관계론이라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일세. 관계론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이며,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지. 그래서 관계론 사유체계 안에서 거론되는 인간은 ‘관계로서의 인간’이며 ‘자연 속의 인간’이야. 거기에서 조화와 균형의 원리도 나온다는 믿고 있네.

신 교수는 관계론으로 '논어'와 '주역' 등의 동양고전을 재해석하면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조명해 내며, 동시에 21세기의 새로운 문명과 사회구성 원리를 모색하고 있네. 예를 들면, 그는 '논어(語)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부화)小人同而不和”이라는 구절을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하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和와 同을 대비시키는 방식을 선호하는 동양학의 관계론적 구조에서 어긋나 있다고 지적하네. 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로, 同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로 재해석해서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라고 해석하고 있지. 그는 同의 논리를 和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이고, “20세기를 성찰하고 21세기를 전망하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의 문제를 세계사적 과제와 연결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하네.

흥미롭게도 신 교수는 이 책에서 묵가(墨家)를 통해 겸애와 반전 평화 사상을 읽고 있네. 묵가가 전국시대에 패권적 질서와 지배계층의 사상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세력으로 등장하여 기층 민중의 이상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것일세. “중국 사상사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조직”이며,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이 그 이후 장구한 역사 속에서 겪어 나갈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역사의 초기에 미리 보여준 역설적 선구자”라고 갈파하고 있어.

고전 재해석이 이 책의 주 내용이지만 거기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아닐세.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를 언급하면서 학생들에게 진정성과 정서 함양을 위해 시를 많이 읽으라고 권유하기도 하네. 그는 또 세계 최고(最古)의 시집 <시경>을 읽을 때는 시를 노래했던 백성들의 삶을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그의 시경 독법은 '삶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작업이야. 나 역시 신 교수처럼 거짓 없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네. 그의 말대로 시적관점은 대상을 시공간적으로 여러 시각에서 다양하게 바라보게 해주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줘.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왜 시를 읽고, 시적관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말일세. 내가 자주 시를 인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야.

아쉽지만, 신 교수가 성공회대학에서 정년퇴임 후에 했던 <인문학특강> 강의의 마지막 시간에 다시 강조할 정도로 가장 아끼셨던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을 인용하면서 편지를 마치고 싶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경제·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교훈,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이 ‘헬 조선’의 젊은이들을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곱씹어야 할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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