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상의 등 경제주체들이 주도한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장면은 19일 주요일간지 1면을 장식하며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지난 18일 아침기온 영하 14도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주도하는 ‘경제활성화 입법촉구 천만서명’에 직접 이름을 남길 목적에서다. 한파만큼이나 움츠러든 경제상황과 양극화 문제의 근본원인은 국회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 장면은 19일 주요 언론사 1면 기사를 도배하듯 장식하며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렇게 박 대통령은 스스로를 국민의 위치로 놓고 국회와 정치권에 책임을 물었다.

비슷한 시각, 국회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조는 박근혜 대통령과 같았다.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발목으로 법안처리가 안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뒤 그 책임을 다시 야당에 떠넘겼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는 “망국법”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국회에 법안처리를 당부하는 대통령, 국회선진화법의 위헌성을 강조하며 야당 탓으로 돌리는 여당 대표, 그리고 야권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등 야당의 지도자들. 그림은 나왔다. 바로 20대 총선 ‘야권 심판론’이다.

◇ ‘야권 심판론’ 불붙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이 같은 야권 심판론은 지난 13일 신년기자회견을 연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본격화 됐다. 국회의 입법지연을 비판한 박 대통령은 “제가 바라는 것은 정치권이 국민의 안위와 삶을 위해 국회의 기능을 바로잡는 것”이라며 “국민여러분이 이런 정치문화를 만들어주시는 데 힘을 모은다면 어떠한 거센 도전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야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사실 선거라는 것은 ‘집권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집권세력의 국정성과에 따라 유권자들이 투표로서 평가를 한다는 의미다. 잘 할 경우에는 연장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교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집권당의 선거전략은 성공한 정책의 홍보에 맞춰지고, 야당은 집권당의 실패를 부각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선거전략과 달리 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야권 심판론’을 꺼내들었을까. 우선 박근혜 정부의 성과 가운데 선거 슬로건으로 사용할만한 정책이 마땅치 않다는 게 크다. 실제 집권 1년차에 국정원 대선 조작사건으로 시간을 보냈고, 2년 차에는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3년 차에는 정윤회 파동과 메르스 열병으로 발목이 잡혔다. 위안부 합의도 피해자들이 반대하고, 한일 양국의 해석이 엇갈리면서 슬로건으로 내세우기 어렵게 됐다.

물론 공무원연금개혁을 성사시켰으나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50년 후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론을 막는데 최적의 카드가 바로 ‘야권 심판론’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최근 확정된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룰도 관계가 있다. 김 대표가 언급한 것처럼 상향식 공천에는 외부인재를 영입하기가 까다롭다. 정치경험이나 자산이 없는 외부인사가 당내 경선을 뚫고 당선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재영입과 바람’이라는 ‘정치 쇼’적인 측면에서 야권에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론의 관심을 끌어올 수 없다면, 차라리 야권의 분열을 부각시키면서 정부여당의 ‘집권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전체 예비후보 986명 중 60%가 새누리당 출신이다. 이렇게 많은 인재들이 새누리당의 민주적 절차에 의한 공천에 참여하고자 들어왔다”면서 “새누리당은 100% 상향식 공천으로 지역주민이 원하는 후보를 선거에 내 보낸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유권자들이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서명운동에 동참하던 비슷한 시기, 김무성 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을 망국법으로 규정하고 야권의 법안처리 발목잡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국회에 책임을, 다시 여당대표는 야당에 전가한 셈이다.
◇ 한편에서는 입법촉구, 다른 한편에서는 야당의 보이콧 유도

다만 ‘야권 심판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기제가 남아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야권의 ‘법안처리 발목잡기’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안’ 본회의 우회상정이라는 강수를 뒀다. 권성동 의원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을 운영위원회에서 야당과 논의 없이 스스로 부결한 다음, 본회의에 바로 올려서 표결하겠다는 심산이다.

우회상정과 최종 본회의 처리까지 가능할 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끌어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의사일정에 보이콧을 선언했고, 이에 따라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로 예정된 여야수석부대표 회동도 무산됐다. 노동4법과 기업활력제고법, 북한인권법, 테러방지법 등 쟁점법안 등의 회기 내 처리가 어려워질 것이 예상된다.

앞서 이목희 더민주 정책위의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 “총선 전까지 우리 경제가 좋아질 리 없다. 그렇다면 야당의 비협조로 경제가 어렵다고 말하려는 것 아닌가 추측된다”고 예측하면서 “쟁점법안에 야당은 대안을 제시했으나 새누리당에서 대답이 없다. 솔직히 새누리당의 태도를 보면 (법안처리) 전망이 밝지 못하다”고 의심했다.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1,000만 서명운동의 대상이 되는 법률은 정부가 발의한 서비스법을 제외하고 모두 새누리당 의원들이 제출한 법률안으로 새누리당의 당론”이라면서 “신년기자회견이나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야당을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여당을 편드는 행위”라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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