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박병모:현 광주뉴스통 발행인, 전 광주 FC 단장,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시사위크]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남민심이 심상치 않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광주를 한 바퀴 돌고나면 지지율이 껑충껑충 뛰어 올랐지만, 이제는 그러한 동력마저 사그라지고 있다. 호남민심이 조금씩 식어가고 있는 데는 무엇보다 안철수 의원이 ‘제2의 친노’ 길을 답습할 거라는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안 의원은 호남출신 허신행·김동신 전 장관,한승철 검사장 등 세 사람을 인재로 영입한다고 해놓고는 몇 시간 만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취소해 버렸다. 안 의원 자신의 청렴성을 보여주기 위해 허 전 장관 말처럼 호남인재 세 명을 인격살인 한 셈이다. 반대로 ‘입법로비 갑질’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신학용 의원은 버젓이 영입했다.

이렇게 엇갈리는 인재영입을 지켜보면서 궁상맞게도 이런 생각이 든다. 신 의원은 현역이니까  원내교섭단체 20명을 채우면 국고보조금 88억 원을 받는 데 보탬이 되기에 고무줄 잣대를 들이댄 게 아닌가 싶다. 호남출신 인재들이 재판 끝에 무죄를 받았음에도 영입하지 않는 것은 도덕성의 잣대를 국고보조금에 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승만 국부론’ 발언에 대한 파문이 일자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자신이 했던 발언을 물타기 위해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했다. 함께 당을 이끌어 나갈 동지인 한 위원장이 궁지에 몰렸음에도 안 의원은 참배에 불참했다. 보태 얘기하면 ‘간철수’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더민주에 몸담았던 김동철·임내현·권은희·황주홍 등 호남지역 비주류 의원들이 탈당해 안 의원의 우산 속으로 몸을 숨기자 호남민심 또한 싸늘해져가고 있다. 그동안 친노에 기웃거리고 줄서기를 하다 민심이 기울자 잽싸게 말을 갈아타는 호남 비주류 의원들을 무조건 받아들여 ‘도로 민주당’으로 만들려하는 게 새정치이고 혁신의 정치냐는 여론 때문이다. 

이들 호남의원들은 국민의당으로 몸을 피했지만 2012년 대선과정에서 안 의원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로 이미 채워진 당 조직원들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대표와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자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며 막말을 했던 참모들도 더러 있다. 호남 현역들은 이곳 민심이 싸늘해 비록 국민의당으로 옮겨갔지만, 안 의원의 일부 참모들이 자신들을 향해 불출마 선언을 하라고 은근히 강요를 하고 있는 사실 앞에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있는 처지에 놓여있다.
 
21일 치러진 국민의당 광주시당 창당대회는 이러한 불협화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남음이 있다. 행사가 열린 김대중컨벤션센타에 ‘안철수’라는 대선주자 급에 걸맞게 정치지망생 내지는 시민들의 열기로 가득 찰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러질 못했다. 좌석은 채워졌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양 옆 플로어에 약간 서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박주선 의원과 박준영 전 지사가 같은 장소에서 치렀던 출범식과 창당대회 때, 입구에서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채워졌던 것과 비교하면 열기도 환호도 없었다.

미숙한 행사 운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당 광주시당 공동위원장 선출 때 해프닝이 벌어진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광주시당 위원장으로 뽑힌 국립대학교수가 자신이, 자신을 천거하고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아이러니한 진풍경이 연출됐다. 또 다른 공동위원장인 김동철 의원이 신종플루에 걸려 병상에서 영상메시지를 보낸 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김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는 것도 ‘짜고 치는 임원 선출’이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안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뒤 윤장현 광주시장을 전략공천하고 최근 국민의당으로 합류했던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보이지 않은 것도 ‘옥에 티’였다. 김 의원의 불참은 당 운영 문제로 안 의원에게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시켜준 결과가 아닌가 싶다. 

명색이 야당 텃밭인 광주에서 창당대회를 치른 안 의원이 호남정치복원과 관련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한상진 위원장에 이어 연단에 오른 안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더민주를 싸잡아 공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갑질 하듯 정치에선 기득권 양당이 갑질하고 있는데 오는 4월 총선을 통해 3당 체제로 바꾸어야 한국 정치 바뀐다.”  

이에 앞서 연단에 오른 한 위원장은 “광주는 역사에서 크게 3번에 걸쳐 낡은 틀을 버리고 새로운 생명을 낳는 ‘탈바꿈’이 일어났다”며 그 대표적인 예로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 2002년 대통령 경선, 적대적 공존의 양당체제에서 더민주를 떠나 국민의 당으로 이동하는 것 등을 꼽았다. 안 의원과 한 위원장 모두 광주정신을 언급하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자유와 박애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날면서 어둠과 불신의 시대를 넘어 희망과 연대를 이뤄나가자고 언급한 것은 좋지만, 정작 중요한 호남정치 복원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왠지 찝찝하기만 하다. 

안 의원은 더민주에서 떠밀려 탈당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지지율이 반등토록 밀어준 호남민심이 최근 들어 자신을 미덥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눈치다. 故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좋아서 민심이 쏠렸나, 호남민들이 갈 곳 없어 방황하다 문재인이 싫어서였지, 현역의원들이 내 밑으로 기어들어 오지 않았는가’라며 혹여 자만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민의당 시스템이나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음이 이를 반증한다. 더민주를 탈당하려던 호남 비주류 현역의원인 이윤석·김영록·이개호 의원 등이 주춤거리다 마침내 주저앉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DJ 가신인 박지원 의원이 21일 더민주를 탈당한 뒤 제3지대에 남아있겠다고 하는 것이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잔류로 돌아선 것도 이 같은 연유에서다. 안철수 의원이 원내교섭단체 요건인 현역 의원 20명을 채우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 또한 그래서 나오고 있다.  

더욱이 호남정치복원을 줄기차게 외쳐대며 신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박주선 의원과 박준영 전 지사마저 천정배 의원과 합당을 통해 제2의 친노 길을 걸으려는 안철수 신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신당추진세력끼리 뭉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천 의원이 안철수 신당으로 갈 경우, 먼저 당을 옮긴 현역의원들처럼 찬밥신세에다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천 의원은 안 신당과의 합류 보다는 더민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호남지역 신당 주체세력들과 함께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쌓여있다.

이런 정치판에서 안 의원이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이사람 저 사람을 데려와 세불리기를  통해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던 것 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공천문제로 국민의당은 또 한 번의 내홍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새정치를 한다’, ‘혁신을 한다’고 해놓고 제2의 친노 길을 답습하거나 공천 밥그릇 싸움만 해댈 경우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남민심은 서서히 그리고 갈수록 떠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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