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지배구조원 1일 ‘국내 상장사 황금 낙하산 도입 현황’ 보고서 발표
전체 상장사 10.8%(183사) 황금낙하산 제도 보유
코스닥시장 도입 비율이 유가증권시장 보다 4배 이상 높아

▲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황금 낙하산 제도를 보유한 국내 상장사의 비율은 평균 10.8%에 달한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기 위한, 이른바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s)’ 제도가 경영진으로 사익추구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주목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1일 ‘국내 상장사 황금 낙하산 도입 현황’ 보고서를 통해 “황금낙하산을 도입한 일부 기업의 경우, 정해진 퇴직금의 배수 또는 자기자본의 일정비율 등 특이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전체 주주의 권익 보호가 아닌, 대주주나 기존 경영진의 사적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황금낙하산 제도 도입은 기업가치 훼손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경영권 방어 명분으로 사익 추구, 기업가치 훼손” 우려

‘황금낙하산’ 제도는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다. 적대적 M&A로 인해 기존 임원이 임기만료 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임될 경우, 해당 임원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로, 인수합병 비용을 높여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하지만 적대적 M&A의 위험이 없는 평상시에는 경영자를 해임하기가 어려우므로 무능한 경영진에게 과도한 혜택을 부여하는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 있는 단점도 존재한다. 특히 부실경영으로 인해 경영권을 잃은 임원에게조차도 기업의 자산을 희생해 과도한 보상금을 지급하게 되므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리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미국 월가의 최고경영자들이 경영 실패에도 거액의 퇴직금을 챙기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황금 낙하산 제도를 보유한 국내 상장사의 비율은 평균 10.8%에 달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작년 1월 기준 상장사들의 정관을 조사한 결과 978개 코스닥 상장사 중 158개사(16.16%)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714개사 중 25개사(3.5%)가 각각 황금 낙하산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스닥시장과 유가증권시장의 전체 상장사에 대해 살펴보면, 상장사 1,692사 중 10.8%(183사)가 황금낙하산 제도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 <2014년 국내 상장사 황금낙하산 도입 현황: 시장별> 자료=한국기업지배구조원.

특히 코스닥시장의 황금낙하산 제도 도입 비율이 유가증권시장의 도입 비율보다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코스닥시장 상장사가 적대적 M&A 공격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국내 최초 황금낙하산 도입 사례’인 옵셔널벤처스코리아(현 옵셔널캐피탈)는 지난 2001년 6월 2대주주였던 광주은행과 소액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에 ‘대표이사의 경우 자진퇴임이나 기간만료에 의한 퇴임의 경우 이외에는 상기 기준에 의한 금액 이외에 퇴직위로금으로 50억 원을 추가로 지급함’이라는 문구를 추가했고, 이를 근거로 대표이사는 퇴직과 함께 46억원을 챙겨 떠났다. 이 회사는 이듬해인 2002년 상장폐지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황금낙하산 제도를 부실기업의 자금 횡령 수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확산됐다.

이화전기공업은 2003년 8월에 ‘적대적 M&A로 인한 이사 실직 시 통상적인 퇴직금 이외에 보상액으로 대표이사에게 30억원 이상, 일반이사에게 20억원 이상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정관에 추가하려고 했으나, 같은 해 10월 해당 안건을 상정 철회한 적이 있다. 이화전기공업은 M&A에 대한 기대감으로 2003년 7월 주가가 급등했지만, 이후 황금낙하산 추진을 발표하자 M&A 무산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매도로 주가가 하락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엄수진 연구원은 “코스닥시장 상장사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보다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인수합병 주체가 주식을 매입하는 부담이 적다”면서 “자기자본 규모 역시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기 때문에 M&A 주체가 경영권 장악에 필요한 지분율을 확보하는 것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분석했다.

황금낙하산을 도입한 기업들의 보상유형 다양했다. △퇴직금 이외에 추가로 ‘특정금액(퇴직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비롯해 △정해진 퇴직금의 배수 △자기자본의 일정비율 등 특이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규정도 있었다.

▲ <보상유형이 특정금액인 경우 대표이사 퇴직보상 하한금액별 기업 수> 자료=한국기업지배구조원.

우선 황금낙하산 보상유형을 ‘특정금액(퇴직보상금)’으로 정한 158개사의 약 45.57%에 달하는 72개사는 대표이사의 비자발적 해임 시 최소(하한금액) 50억원을 지급할 것을 정관에 명시하고 있었다. 이어 30억원(24개사), 100억원(21개사) 등 순이었다. 300억원 이상의 거액을 퇴직보상금으로 정한 업체도 3개사에 달했다.

한 업체의 퇴직보상 하한액은 자기자본의 160.3%에 달하는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회사는 자기자본 규모가 약 31억원에 불과한데,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인한 해임시 대표이사에게 50억원을 지급하도록 명시했다. 쉽게 말해, 회사를 통째로 퇴직금으로 줘도 부족한 셈이다.

보상유형이 ‘배수’인 경우에는 퇴직금의 일정 배수로 정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연봉을 곱셈의 대상으로 한 경우도 있었다. 배수의 최대값은 100이었으며, 이 경우는 모두 퇴직금의 100배로 정하고 있었다. 연봉에 대한 배수의 최대값은 30이었다.

자기자본의 일정비율을 지급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는데, 한 기업의 경우 ‘대표이사는 자기자본의 20%, 일반이사는 자기자본의 15%’를 퇴직보상금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보상유형을 따로 정하지 않은 기업도 있었다.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기업은 ‘비자발적인 사임 시 이사에게 퇴직위로금을 지급한다’고는 규정했으나, 구체적인 금액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이에 대해 엄수진 연구원은 “이 경우 자의적인 위로금 지급이 가능하므로 유용의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엄수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M&A 방어수단인 ‘황금낙하산’ 제도가 실제로 부적절 하게 이용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서 “책임감 있는 경영진이라면 경영권 방어수단의 마련보다는 탁월한 경영능력 및 주주권익 보호 노력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며, 인수합병 주체에게 유독 불리한데다 경영진의 사익 추구에 유용될 여지가 있는 M&A 방어수단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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