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장거리 로켓 광명성 발사 이후,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던 사드배치를 공론화시키며 연일 강수를 두고 있다. <사진=북한 광명성 발사장면>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카드는 오픈됐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여야를 떠나 카드의 효과를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인사로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쓴 소리를 이어가던 정병국 의원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압박카드였던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 했고, 남북교류의 마지막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정치권과 국민에게 묻고 있다. ‘적전분열을 할 것인가, 아니면 힘을 모아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

조치는 신속했다. 북한이 7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발사 5시간 만에 미국과 사드배치 협의를 공식화했다. 8일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사드배치 문제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양국 정상이 사드배치를 공론화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 ‘압박카드’ 모두 오픈한 정부, 루비콘강 넘었다

사실 사드배치는 북핵문제 해결에 중국의 적극적 움직임을 유도하기 위한 압박용 카드였다. 사드운용에 들어가는 ‘X-밴드 레이더’는 사거리 2,000km로 중국내륙까지 커버한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중국입장에서 큰 부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그간 정치권의 사드배치 주장에 대해 중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한편, 대북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해왔다.

▲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배치 협의에 이어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잘잘못은 추후 일이고 중요한 것은 '적전분열'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유감’ 정도의 입장표명에 그쳤다. 사실상 이번에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용인한 셈이다. 오히려 중국은 ‘방어용’인 대한민국의 사드배치 협의에는 ‘깊은 우려’를 보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핵 문제해결에 중국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더 이상 북핵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이고, 사드 배치를 공식화한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단호함도 보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드가 배치되더라도 사거리 1,000km의 레이더를 경북지역에 배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12일 국방부는 “배치 장소를 선정할 때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발표, 강수를 뒀다.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카드도 오픈했다. 개성공단 전면폐쇄가 그것이다. 정부는 사드배치에 대한 여론수렴과 공론화가 시작되기도 전인 10일 개성공단사업을 전격 중단했다.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잠정중단 사태는 있었지만 전면적인 중단은 처음이다. 북한은 개성공단 자산동결과 함께 남북간 군 통신선과 판문점 연락 통로 폐쇄로 맞섰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됐고, 모든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 모호했던 여야 대북정책, ‘판’ 커진 대북이슈에 경계선 명확

이 같은 강도 높은 대북제재는 정치권에 명확한 선을 긋는 효과를 가져왔다. 사실 대북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여야 정치권은 서로 다른 듯 같은 목소리를 냈다. 문제해결 프로세스도 대동소이 했다. ‘북한도발→규탄→경제제재→긴장고조→어설픈 합의’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단호한 대결국면 선언으로 여야의 경계선이 명확하게 그어졌다.

먼저 새누리당은 야당의 ‘햇볕정책’ 실패를 주장하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변한다. 매년 1,000억 원의 현금이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 정권에 유입돼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지 않았느냐는 주장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기조에 비판적이던 비박계도 잘잘못을 떠나, 이제는 힘을 모아야할 때라는 논리다.

정병국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화해정책에도 북한은 핵개발을 진행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압박을 해도 핵을 개발했다. 우리의 북핵정책은 실패”라면서도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이후의 문제다. 이 시점에서는 국론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해야할 때”라고 설명했다.

▲ 개성공단 폐쇄 후 정치권은 새누리당 대 더민주와 국민의당 구도로 경계선이 명확히 나눠졌다. 국민여론 역시 찬반양측으로 극명하게 나눠졌다. <데이터=리얼미터>
햇볕정책 추진 주체였던 더불어민주당은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남북교류의 상징이자 안전핀 역할을 하던 개성공단 폐쇄로 결국 남북관계가 80년대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주장이다. 이종걸 원내대표 등은 ‘총선용이 아니냐’며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문제는 국민의당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중간에서 ‘중도층’을 공략했지만, 명확히 경계선이 그어지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물론 국민의당의 근본이 야권인 만큼, 국민의당은 더민주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 무엇보다 ‘김대중의 후예’를 자처하는 인물들이 포진한 만큼 햇볕정책에 대한 비난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합리성’으로 보수층 표심을 노리던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판’ 커진 대북이슈 한 번에 울며 겨자먹기로 ‘좌클릭’하게 된 셈이다.

여론도 절반으로 나눠진 가운데, 정부의 단호한 대처에 찬성하는 견해가 높게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개성공단 전면중단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잘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47.5%로 ‘잘못했다’고 응답한 응답자 보다 소폭이지만 많았다. ‘사드배치’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는 의견은 49.4%로 반대한다는 의견 42.3%에 비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2월 1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여 명 대상. 유무선 ARS 방식(성, 연령, 지역별 가중치 부여). 응답률은 5.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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