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박병모:현 광주뉴스통 발행인, 전 광주 FC 단장,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시사위크] 정치생명을 판가름 짓는 명단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컷오프 대상의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공개한 것이다. 그동안 세간에 이름을 자주 오르내렸던 현역들이 다수 포함됐다.

국회 다선 의원은 물론이고 대북 · 종북, 그리고 회색분자 이미지, 카드깡, 부정비리에 연루된 문제 있는 인사들이 대체로 포함됐다. 그렇지만 1차 컷오프 명단에 호남출신 정치인은 빠졌었다. ‘친노에 운동권 출신이어서, 한 울타리 안의 가족이라고 해서 살아남았나 하고 의아해하던 차에 25일 오후 전략공천 지역이 발표됐다. 광주 북구 갑과 서구 을이 해당됐다.
 
광주 현역으로서는 가장 선수가 높은 3선의 강기정 의원이 버티고 있는 지역구가 바로 북구 갑이다. 광주에서는 조직력이 가장 탄탄하고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면 광주시장에 출마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강 의원이다. 당사자로서는 사실상 컷오프가 됐으니 청천벽력과 같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감안할 때 상대인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출마한 국성근 전남대 교수와 김유정 대변인, 김경진 변호사 등 어느 누구와 맞붙어도 승리를 낙관할 수 없었다. 그만큼 광주에서의 반노 바람이 세다는 증거다.
더민주로서는 광주의 밑바닥 민심을 제대로 간파했다고 볼 수 있다. 기껏해야 이용섭 전 의원이 출마예정인 광산 을 지역만이 광주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곳이고, 영입인사들의 경쟁력도 약해 제1야당인 더민주로서는 초라한 성적이 불 보듯 한 형국이다.
 
그런 점에서 강 의원에 대한 컷오프는 상징적 의미가 그만큼 크다 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 하에서 특정인과 특정지역을 배제하는 정치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호남정치지형이 과거와는 달리 국민의당과의 양당 구조로 바뀐 상황에서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더민주로서는 읍참마속의 심정이었을 게다.
 
어찌 보면 더민주가 이번 총선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문재인 전 대표의 책임도 크지만, 광주출신 국회의원들도 이에 자유로울 순 없다. 그 맨 앞줄에 서 있는 의원이 바로 강 의원과 같은 3선으로 광산 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다.
 
이들 두 의원은 현재 정당을 달리하고 있지만 2004년 노무현 탄핵 정국 때 실시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른바 탄돌이세대다. 이후 3선을 했으니 12년 동안 의원배지를 단 셈이다. 호남의 간판스타로서 자리매김을 하지 못했고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데서 광주시민들의 실망감 또한 없지 않다.
 
공교롭게도 이들 두 의원은 친노 패권주의 청산과 호남정치복원을 외치는 호남민들의 절절한 요구로 호남정치판이 양당구조로 바뀌면서 서로의 운명이 엇갈렸다. 강 의원은 더민주에 그대로 남아 그나마 친노와의 의리를 지키려다 올가미를 스스로 뒤집어 쓴 꼴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김 의원은 국민의당이 창당되자 가장 먼저 승선한 호남지역 최초의 탈당 의원이다. 천정배 대표는 그런 행동을 꼬집으며 곤혹스런 처신이라고 비아냥 거렸다,
 
이토록 호남정치가 혼미한 정국으로 빠져든 상황에서 강·김 의원 모두가 어쩌면 전략공천이라는 희생양으로 떠오를 수 있겠다. 2년 전 자신들이 기습작전으로 감행한 윤장현 현 광주시장의 전략공천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뜻이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윤 시장을 전략공천 해야 한다며 마치 광주시민들의 여론인 양 밀어붙이기에 나섰다.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안철수 의원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으로 받아들였다. 강운태 전 시장과 이용섭 전 의원을 컷오프 시켰다는 얘기다. 당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면서 광주시민들의 공천을 빼앗고 광주시장 전략공천을 밀어붙인 5명의 현역에게 붙여진 불명예스런 딱지가 바로 신오적이다. 강기정·김동철 의원도 신오적에 포함됐다.
 
아이러니한 한 것은 두 의원이 자신들이 과거에 행했던 전략공천이 부메랑 되어 이제는 자신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거나 꽂을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당으로서는 더민주에서 컷오프 명단을 내놓고 정치개혁의 물꼬를 통 크게 연 만큼 이에 응답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명단에서 친노와 386운동권 출신들을 제외하고 서너 명을 영입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게 뻔하다. 임시본회의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어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점에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지지율을 높이되 공천 작업을 다소 늦출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이삭줍기로 국고보조금을 타먹고 더민주에 버금가는 개혁공천을 하지 않을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리되면 호남바람을 수도권으로 확산시키지 못한 나머지 호남의 당으로 전락할게 뻔하다.
 
어차피 총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컷오프가 화두로 등장한 상황에서 25일 광주에 온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과거의 낡은 세력과의 단절을 얘기한 만큼 국민의 당도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당장 물갈이 대상자를 발표할 것 같지는 않다.
 
더민주와는 달리 국민의당으로 출마 뜻을 밝힌 에비후보는 지역구당 많게는 7~8명에 이르고 이들이 안의 남자라고 소개하면서 유권자들에 다가서고 있다. 이를 정리하는 것도 간단치 만은 않다. 혹여 공천 잡음이 여기저기서 터진다면 현재 국민의당으로 쏠려있는 민심이 피로를 느낀 나머지 토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공정한 경선 룰을 적용치 않고 전략공천과 다를 바 없는 숙의배심원제도입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되면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의 반발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제 호남정치판에서 선수가 가장 많은 김 의원의 컷오프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그런 만큼 광주시민들의 이목도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그 대항마로 나선 국민의당 후보로 김정록 대변인, 윤봉근 광주시의회 의장,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전직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경 변호사가 표밭을 갈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지고 성숙된 만큼 정당에서 굳이 컷오프를 하지 않아도 유권자들에게 맡기면 자연스럽게 정리될 거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야당 텃밭인 호남에서 원내 제2당을 둘러싼 과도기적 정치상황에서 차기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키울만한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은 이제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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