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두산그룹이 박용만 회장 시대를 마무리하고, 박정원 회장 시대를 연다. ‘형제 경영’ 전통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지만, 국내 주요 대기업 중 처음으로 ‘4세 시대’를 맞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다만 덤덤하게 회장직을 내려놓은 박용만 회장은 조금은 씁쓸한 마지막 페이지를 남기고 떠나게 됐다.

◇ 두산그룹 ‘3세 시대’의 명과 암, 이제는 역사 속으로

무려 120년의 역사를 지닌 두산그룹은 ‘3세 경영’부터 형제 경영의 전통을 이어왔다.

3세 경영의 첫 주자는 맏형 박용곤 명예회장이었다. 그는 1980~90년대 두산그룹을 이끌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차남인 고(故) 박용오 회장. 하지만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1997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그룹을 이끌었으나 이후 ‘형제의 난’을 겪으며 가문에서 퇴출당했고, 결국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과정에서 3남인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이 잠시 그룹회장직을 역임한 뒤 비상경영체제를 거쳤고, 2009년엔 4남 박용현 회장이 그룹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바로 박용만 회장이다. 박용만 회장은 동생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과 함께 다른 형제들과 이복형제지간이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지난 2012년부터 두산그룹을 이끌어왔다.

이러한 전통에 따르면, 박용만 회장 다음은 6남 박용욱 회장 차례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두산그룹을 떠나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때문에 바통은 다시 박용곤 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에게로 넘어갔다. 두산그룹의 3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4세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에너지 넘쳤던 박용만 회장, 끝은 ‘씁쓸’

박용만 회장은 재벌 총수임에도 SNS를 즐겨하는 등 소통에 능했고, 이는 두산그룹의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대외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하지만 두산그룹 내로 눈을 돌려보면,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두산건설, 두산엔진 등 주요계열사들이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른 (주)두산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무려 1조7,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그룹 전반에 구조조정 광풍이 분 가운데, ‘신입사원 희망퇴직’ 논란에 휩싸이며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박용만 회장의 그룹회장직은 끝이 좋지 않은 상황이 됐다.

두산그룹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박용만 회장은 용퇴 의사를 밝힌 이사회에서 “지난해까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턴어라운드 할 준비를 마쳤다”며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두산그룹의 지난해 대규모 적자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따른 일회성 비용 발생이 주된 원인이었다. 올해는 구조조정 효과를 보며 다시 흑자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두산그룹의 향후 행보에 따라 이 구조조정은 박용만 회장의 ‘업적’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박용만 회장의 그룹회장직 마지막 페이지에 ‘대규모 적자’가 기록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4세 경영 시대’, ‘박정원 회장 시대’라는 간판 뒤에 박용만 회장의 퇴장이 다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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