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의 공천작업이 팔부능선을 넘은 가운데, 당초 내걸었던 공천혁신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국민공천제 도입으로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방해와 저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2015년 내내 정치권을 달궜던 혁신 논쟁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여야 공히 정치개혁의 근본을 공천에 두고 ‘오픈프라이머리’ ‘시스템 공천’ 등 다양한 혁신경쟁을 펼쳤으나 현재진행은 과거총선의 공천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총선이 끝나면 바로 다가올 대선과 차기 총선까지 계파갈등의 악순환 역시 끊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14일 기준 여야는 속속 지역구 공천결과를 발표하는 등 팔부능선을 넘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공천 후유증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현역 1호로 컷오프된 새누리당 김태환 의원은 이미 탈당해 무소속 출마입장를 굳혔고, 이날 공천에서 배제된 현역의원인 박대동 의원과 강길부 의원은 재심이 거부될 경우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놨다.

◇ 여야 공천 후유증 몸살, 석연치 않은 공천심사가 ‘원인’

현역의원 뿐만 아니라 청년·여성 추천지역으로 선정된 곳에 예비등록했던 후보들의 불만도 높다. 명확한 기준 없이 일부 지역구를 특수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출마를 준비했던 후보자들이 사실상 컷오프 된 것과 마찬가지 상황에 처한 것. 새누리당이 부산 사상구를 여성 추천지역으로 선포하자 장제원 예비후보가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예고했고, 서울 관악갑도 당이 청년추천지역으로 지정하자 일부 후보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 문재인 대표가 남긴 '시스템 공천'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정무적 판단이 개입하지 않을 목적이었으나, 현재 더민주 지도부는 마음껏 정무적 판단으로 공천을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이해찬 의원의 공천배제도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김성수 대변인은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대 쟁점인 TK지역과 윤상현 의원의 공천은 당내 갈등 속에 마지막까지 발표를 미루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한구 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당 정체성과 관련해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응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나”라고 언급, 유승민 의원의 공천배제까지 예고하고 있어 공천갈등과 그 후유증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상황은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로 시작된 당 주도세력 교체 움직임은 이른바 ‘친노좌장’ 이해찬 의원까지 낙천시키면서 표면화되고 있다. 정청래 의원과 전병헌 의원 등은 이미 재심신청을 한 상황이고, 이날 낙천된 이해찬 의원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던 친노 최재성 의원은 “보이지 않는 손이 (공천에)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한 상태다.

그 사이 여야 지도부 인사들은 모두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나 황진하 사무총장,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은 단수추천을 받아 일찌감치 본선행을 결정지었다. 김무성 대표나 이인제 최고위원, 서청원 최고위원 등은 경선을 치르게 됐지만, 인지도가 높다는 점에서 무난히 공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지도부는 전원 생존, 새로운 계파형성과 갈등의 불씨 ‘상존’

더민주의 비상대권을 쥐고 있는 비대위원들 역시 공교롭게도 모두 공천을 받았다. 박영선 의원과 변재일 의원, 우윤근 의원 등 현역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단수추천을 받아 본선에 올랐다. 이용섭 전 의원도 단수추천을 받았으며 영입인사인 표창원·김병관 위원은 전략공천을 받았다. 개혁을 주도할 지도부가 오히려 공천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당선 보다 정당공천이 더 어렵다’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이런 모습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매 총선 때마다 여야는 공천문제로 내홍을 겪었고, 공천을 받기 위해 자연스럽게 계파를 형성해 ‘세’ 대결을 지속해 온 것이 사실이다.

'비생산적인' 갈등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여야는 지도부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공천혁신을 논의했다. 김무성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당대표 공약으로 내걸었고, 문재인 전 대표는 이른바 ‘시스템 공천’으로 계파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막상 새누리당은 단수·우천추천제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면서 사실상 전략공천의 우회로로 사용하고 있고, 더민주는 이른바 ‘정무적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 공천을 무너뜨리고 비대위가 마음껏 정무적 판단을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20대 총선에서 공천개혁이 완성되지 못하면서, 차기 대선과 총선까지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무엇보다 현 친박과 비박, 친노와 비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새로운 계파가 형성될 여지를 남겨둔 것이 문제라는 게 여야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미 상향식 공천은 공염불이 됐다. 지도부든 공관위든 중앙에서 후보자를 결정하는 하향식이 진행하고 있는데, 상향식 공천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고, 더민주의 한 중진의원 측은 “외인들이 와서 당을 마음대로 하는데, 이들은 나가면 그뿐이지만 남는 우리들은 또다른 갈등의 불씨만을 안게 된 셈”이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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