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내가 작년 가을부터 낯선 공간 낯선 대면이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었던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서울 가리봉동일세. 10여 년 전 소설가 공선옥이 왜 부자들은 압구정동으로 모여들고 왜 가난한 사람들은 가리봉동으로 모여들까. 왜 시인 유하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 한다고 하고, 왜 소설가 양귀자씨는 바람 부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고 할까라고 말하면서 찾았던 곳이기도 하지. 지금도 옛날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고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잠을 자던 벌집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일세. 물론 지금 거기서 잠을 자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교포들이지만

가리봉동에 가면 눈에 많이 띄는 게 한자(漢字), 그것도 우리 세대가 읽기 어려운 간체자(簡體字)로 된 상점 간판들이야. 작년 9월에 처음 가리봉동에 갔을 때 받은 문화적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네. 마치 중국의 작은 도시에 여행 온 것처럼 모든 게 낯설더구먼. 거리에 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말을 사용하는 교포들이니 그럴 수밖에.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서도 종업원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음식 주문도 제대로 할 수 없었네. 커피와 맥주를 파는 호프집도 많지만 일하는 분들과 손님들이 대부분 중국 교포들이라 실내 분위기가 우리가 자주 가는 술집과는 아주 딴판이야. 한국말보다는 중국말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네.
 
내가 사진을 찍은 가리봉동 시장과 골목의 첫인상은 썩 유쾌하지 못했네. 아직도 서울에 도둑이 넘어오지 못하게 가시철조망을 얹거나 깨진 유리 조각들을 흉물스럽게 박아 놓은 담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보이더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곳에 거주하는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알았지만, 그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 특히 원주민들과 중국 교포들 사이의 갈등이 꽤 심각하더군. 월세를 받는 집주인이 많은 원주민들은 교포들이 담배꽁초나 해바라기 씨를 거리에 버리고,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떠드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네. 대부분 노년 세대인 집주인들도 교포들이 벌집을 떠나면 자신들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중국 교포들의 이질적인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거지. 그래서 은근히 무시하기도 하고.
 
지난 몇 개월 동안 가리봉동에 드나들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사회가 되었다는 걸 실감했네. 20여 년 전부터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도 인종, 국적, 계급, 계층이 다른 여러 집단이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사회가 된 거지. 이주노동자, 국제결혼이주자, 국제결혼 자녀, 외국인 유학생 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200만 명에 가까운 외국인들이 이 땅에서 살게 되었어. 정부 발표에 따르면 만 18세 이하 다문화가정 자녀수만 20만 명이 넘었다는군. 초등생 가운데 다문화 학생 비율도 2%를 넘었고. 이젠 좋든 싫든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핏줄인 단일민족이라고만 배웠으니 다문화사회에 제대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 여성가족부가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의 성인 4000명과 중·고등학생 36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년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결과를 보면, 다문화와 이주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다문화 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많더군. 청소년들의 다문화 수용성 점수가 100점 만점에 67.63점으로 가장 높았고, 20대부터 50대까지는 각각 57.5, 56.75, 54.42, 51.47점이었어. 예상대로 60대 이상은 48.77점으로 가장 낮았네.
이번 조사에 의하면 '일자리가 귀할 때 자국민을 우선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60.4%나 되더군. 2010~2014'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같은 진술에 대한 다른 선진국들의 찬성 비율은 호주 51%, 미국 50.5%, 독일 41.5%, 스웨덴 14.5% 등이었네.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31.8%. 독일 21.5%, 미국 13.7%, 호주 10.6%, 스웨덴 3.5%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나타났네. 과거 조사에서보다 우리 국민들의 다문화 수용지수가 약간 높아진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인종, 국적, 문화가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네.
 
지난번 편지에서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의 돌풍 원인들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와 그 부정적인 결과들이라고 애기한 걸 기억하지?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 다수가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자신들의 삶이 불안해졌다고 생각하는 백인 중하층 노동자들이야. 앞으로 우리들의 삶이 더 힘들어지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 수용지수는 어떻게 변할까? 트럼프 같은 극우 정치인이 나타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 추방해야 한다고 선동하면? 혼자만의 기우이길 바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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