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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후보 인터뷰-경남 김해을②] 김경수 “검증받은 경험·실력으로 김해 살릴 것”
[총선후보 인터뷰-경남 김해을②] 김경수 “검증받은 경험·실력으로 김해 살릴 것”
  • 소미연 기자
  • 승인 2016.03.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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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 후보는 19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김해를 떠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이제 60만 도시 김해의 발전과 시민들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비전으로 성장했다. <사진=김경수 후보 캠프>
[시사위크|경남 김해=소미연 기자]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간절했다. “이번 선거에 지면 갈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4.2%p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14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0대 총선이 세 번째 출사표인 셈. 김경수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상대 후보에게 패배하면 그동안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지지자들에게 “염치가 없어서 다시 출마한다는 말씀을 못 드릴 것 같다”고 말했다.

때문일까. 김경수 후보의 각오는 남달랐다. 경남도지사 선거 당시 득표율 1위를 안겨준 김해시민의 믿음과 기대를 지켜가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김해에 대해 깊게 고민한 발전 방안들을 이뤄내고 싶었다. 자신은 있었다. 그는 1994년 국회에 첫발을 디딘 이후 20년 넘게 국회·국정·정당을 경험했다. 입법·예산·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을 익힌 것은 물론 2002년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팀에서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렸고,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연설기획비서관까지 두루 역임했다.

참여정부의 처음과 끝을 지킨 김경수 후보는 “경험과 실력이 다르다”고 자부한다. 이를 바탕으로 “연습 없이 일하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에서 ‘김해 대표 정치인’로 변신한 김경수 후보와의 인터뷰는 지난 27일 경남 김해시의 김해실내체육관과 삼계체육공원으로 이동하는 차량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4년 전 출마와 지금의 민심 체감률은 어떤가.
“그때는 늦은 출발로 지역 내에 ‘김경수’가 누구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타이틀로 선거를 치렀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역 주민들은 누구의 비서관이 아닌 우리 지역을 책임지고 끝까지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한 사람의 정치인을 원했다. 그래서 지난 4년을 준비해오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가 아니라 김해를 책임지고 함께 커나갈 수 있는 ‘정치인 김경수’로 시민들에게 알려왔고,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고 있다. 김해가 현안이 산적한 도시인데, 중앙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신뢰를 보여주고 계시는 것 같다.”

▲ 김경수 후보는 김해을 국회의원직에 대해 “연습하는 자리가 아닌 책임지고 증명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배울 수 없는 만큼 준비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진=김경수 후보 캠프>
- 현안에 대한 김경수 후보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더 좋은 김해’를 위해 ▲더불어 함께 잘사는 경제도시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도시 ▲어르신들이 편안한 복지도시 ▲시민들이 편리한 교통도시 ▲누구나 가고 싶은 관광·문화도시를 5대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른 항목별 약속들이 20가지다. 특히 김해의 교육만큼은 반드시 바꿀 생각이다. 친환경 무상급식이 안정적으로 실시되도록 학교급식법을 개정하고, 김해지역교육협의체를 구성해 기숙형고교·행복고등학교 등 좋은 고등학교를 빠른 시일 내에 키워내겠다.”

- 지역발전에 대한 공약은 여야 후보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에 대한 문제점과 현안에 대한 진단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공약도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그 공약을 실행에 옮기고 실천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김해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도 있지만, 김해시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도 상당하다. 중앙정부의 협조와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 장·차관만 안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실국장급과 그 아래 조직까지도 네트워크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함께 풀어내야 한다. 실제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회에서, 또 정부에서 예산심의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김경수 “준비된 사람이 국회의원 해야”

“인지도를 이만기 후보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어떤 정치인이 맞설 수 있겠나.” 김경수 후보의 생각은 지역 내 민심과 사뭇 달랐다.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김경수 후보에 대한 지역의 관심과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19대 총선 낙선 이후에도 김해를 떠나지 않은데 대한 ‘지역 일꾼’으로서의 믿음과 20년 넘게 쌓아온 국회·국정 경험이 ‘국회의원감’으로서 신뢰를 줬다. 이는 지지율 상승세로 이어졌다. 하지만 김경수 후보는 더욱 자세를 낮췄다. 그는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후보는 지난 4년 동안 지역 내 현안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선거를 앞둔 지금도 중소기업을 종종 방문해 관계자, 노동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탁상행정에서 벗어나 현장을 직접 보고, 듣기 위해서다. ‘밥값’하는 생활정치가 그의 지론이다. 실제 이 같은 현장 체험은 경제공약으로 만들어졌다. 김경수 후보는 “영세한 중소기업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나오기 힘들다”면서 ▲기업유치 등을 통한 좋은 일자리 늘리기 ▲골목상권 활성화 등 서민경제 살리고 키우기 ▲중견 강소기업 100개 육성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적경제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이외에도 김경수 후보는 교육공동체, 맞춤형 복지, 수도권형 대중교통 시스템 구축 추진, 제4제국 가야의 역사와 유적 복원 등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특히 그는 “부자감세로 인해 열악해진 지방재정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예산 확보도 자신했다. 여당 텃밭의 유일한 야당 의원인데다 김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상징성까지 있는 만큼 당 입장으로선 최우선 고려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실제 김해만 보더라도 여당의 힘을 기댄 현안 해결은 찾기 어려웠다. 지역구 현역인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19대 총선에서 장유 지역 최대 현안인 부영임대아파트 분양전환에 대한 특별법 추진을 약속하며 ‘표’를 받아갔지만, 결국 해법 찾기에 실패하면서 지역 내 배신감이 크다. 19대 총선에서 김태호 최고위원과 맞붙은 김경수 후보는 당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일반법 추진을 약속한 바 있다. 남은 과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수식어를 뛰어넘는 일이다. 김경수 후보는 해당 수식어에 대해 “평생의 자랑이자 자긍심”이라면서도 지난 총선을 치르면서 “지역 주민들은 누구의 비서관이 아닌 우리 지역을 책임지고 끝까지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한 사람의 정치인을 원했다”고 절감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은 확실히 다르다. ‘정치인 김경수’를 피력하고 있다. 1994년부터 국회 의정활동을 익혀온 그는 2002년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팀을 거쳐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연설기획비서관을 지냈다. 국회·국정·정당을 두루 경험한 것. 김경수 후보는 “20년 넘게 국회와 국정에서 경험하고 쌓은 예산·입법·정책 전문성으로 연습 없이 일하겠다”고 말했다.
- 상대 후보는 여당 후보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경남은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제외한 15명의 의원들 모두가 새누리당 소속이다. 그래서 지역 발전이 돼 있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다. 오히려 야당 소속의 김해시장이 국비를 훨씬 더 많이 가져왔었다. 우리 당 입장으로선, 경남의 유일한 단체장이 김해 예산을 신청했을 때 최우선으로 챙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국회 내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당 출신이기 때문에 잘 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 상대적으로 지역에서 보낸 시간이 적은데.
“김해에 온 것은 2008년으로, 당시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터를 잡았다. 선거는 2012년 19대 총선 때부터 준비해왔다. 하지만 선거를 몇 년 준비해왔느냐가 아닌 실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의정·행정 경험이 중요하다. 국회의원은 연습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나. 시작하면 바로 실전에 투입돼서 책임져야 하고,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배워서 할 자리가 아니다.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고, 정부와 대통령의 국정을 들여다볼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선 아무래도 제가 1994년부터 국회에 있었으니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그간 지역에서 어떤 활동들을 해왔나.
“생활정치 실현에 초점을 맞췄다. 지역 정치의 문제점 중 하나가 정치인들이 주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접촉면이 적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봉사활동이나 행사장에 가서 인사하는 게 전부이지 않나. 그래서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때 창립한 것이 바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생활자치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활동의 일례로, 유라 지역 카페거리의 지도를 만들었다. 카페거리로 알려진 것과 달리 홍보를 포함한 여러 부분들이 체계적으로 안 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인제대 교수, 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장유 지역 복지회관의 경우도 중앙의 예산 배정이 어렵다고 해서,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기획재정부 예산담당관을 만나 머리를 맞댔다. 실제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던 것이다.”

-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높다.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일 뿐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시민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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